기억을 따라 걷는 노래

이우성 개인전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2017. 8. 28. – 9. 24. 아마도예술공간)에서 관객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천 그림’이다. 화려한 색깔 없이 마치 신문 한귀퉁이를 오린 것 같은 흑백이라는 것 말고는, 작년 개인전에서 본 대형 천 그림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우성 개인전에 맞게 찾아왔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 없이 위층으로 향한다. 그러나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로세로 십여 센티미터의 작은 그림들이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아래층에서 본 흑백의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가 같은 전시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긴다.

작은 사각형의 그림들이 나무판 안에 일렬로 놓여있다.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그림을 따라간다. 그 작은 흑백 그림들은 필름처럼, 혹은 만화처럼 연결되어 흘러가지만,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며 연속적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속 사진첩에서 새를 본다. 새 사진은 지난 여름 바다에서 봤던 새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서트.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춤을 춘다.) 다시 장면은 컴퓨터 모니터를 향한다. 모니터 속 사진에는 어떤 남자들이 서있다. 까만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사진은 그 모습을 본 뉴스로 이어진다. 뉴스, 광장, 촛불, 밤, 골목, 공원, 바다. 그렇게 어떤 거리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가느다란 연결고리로 연결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뚝 끊어지기도 한다. (다시 인서트. 아까의 두 사람이 춤을 춘다.) 기억이라는 가느다란 실을 따라 그렇게 흘러간다.

이우성의 그림을 지탱하는 것은 기억이다. 경험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따라 그림은 흘러간다. 기억을 따라가는 그림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파편적이기 때문에 그림은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끊어진다. 그리고 그 기억을 도와주는 것은 사진이다. 아니, 그 기억은 곧 사진의 기억이다. 스마트폰 속 사진첩을 가득 채운 정사각형의 사진은 그 자체로 기억의 파편이다. 이우성의 그림은 곧 사진이거나 사진을 보고 있거나 사진을 보는 눈을 보고 있다. 사진이 기억을 촉발한다. 사진을 따라 기억은 시작되고 흘러가고 또 아무렇게나 끊긴다. 그 끊어진 자리에는 유쾌하게 걷는 것처럼 춤을 추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기억이 흐려진 바로 그 지점에 두 사람은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렇게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그림들이 흘러가게 하는 것은 바로 보는 이의 걸음이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는 걷고 있었다. 시선을 그림의 높이에 맞추고 그것을 따라 걷는 이의 걸음. 누군가의 사진첩을, 누군가의 기억을 훔쳐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옮기는 걸음. 그 걸음을 따라 이우성의 그림들은 재생된다. 각각의 그림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만들고, 그것들이 이어지도록 걷는 걸음에 의해 이우성의 영화는 빠르게 혹은 느리게 재생된다. 이 재생 버튼, 우리의 걸음이 이 그림들을 지탱하는 마지막 요소이다.

한 바퀴 기억 여행을 돌고 나오면 이제 투명한 유리에 그려진, 후렴구의 그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유리 너머로 비치는 바깥 풍경과 아까 그 노래를 상기시키는 두 사람을 겹쳐보면서, 이제 각자의 거리를, 각자의 노래를 만든다. ‘키사스’는 스페인어로 ‘아마도’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억을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를 그려본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지점에서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하고 흥얼거린다. 유쾌하게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떠올리면서.



사진출처 : 아마도예술공간 http://amado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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