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PC x CREAM] 유령회사와 예술적으로 허용된 거짓말

유령회사와 예술적으로 허용된[1] 거짓말




1. 가발 하나의 차이

가수이자 배우 마일리 사이러스를 스타덤에 밀어 올린 미국의 틴시트콤 ‘한나 몬타나’(2006-2011)의 주인공인 ‘마일리 스튜어트’는 낮에는 평범한 10대 소녀이고, 밤이 되면 유명 팝스타 ‘한나 몬타나’로 활동한다. 음악이 좋아서 일찌감치 가수의 길을 가기로 했지만, 평범한 생활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생각해낸 묘안은 다름 아닌 분장술이다. 갈색 머리 여중생 마일리는 학교에서 크게 주목을 받는 편이 아니지만, 금발 가발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으면 또래들이 열광하는 바로 그 팝스타가 된다.

’마일리 스튜어트’(좌)와 ‘한나 몬타나’(우)

한나 몬타나의 스핀오프 영화(‘한나 몬타나: 더 무비’, 2009)에서 마일리는 더 이상 거짓을 살 수 없다며 무대 위에서 금발 가발을 벗어 던져버린다. 충격의 정적. 그리고 이어지는 감동적인 모놀로그, 환상적인 공연, 그리고 썸남과의 눈맞춤. 이로써 마일리와 한나는 화해하고, 가면극은 끝이 난다. 하지만 이중생활이 종료되기 전까지 마일리/한나가 마주치는 인물들은 머리색으로 그를 판단한다. 생김새와 목소리가 완전히 똑같은데 어째서 머리색이 다르다고 둘이 같은 인물인 것을 모를 수 있는지 의아하다면, ‘한나 몬타나’를 즐길 자격이 없는 것. 갈색 머리는 평범 소녀 마일리, 금발은 팝스타 한나. 이해가 안 된다면 외우면 그만이다. 성인이 되어 상큼발랄했던 한나 몬타나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서 가발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 던져야 했던 현실 세계의 마일리 사이러스에게는 화해든 절연이든 쉽지 않았겠지만.



2. 신비주의 아티스트

자기 이름 놔두고 다른 이름을 쓰는 사람들을 꽤 본다. 연예인의 상당수가 가명이나 활동명을 쓰고, 수평적이고 혁신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사원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가 유행이 번져가는 가운데 본명을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대단한 특권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술 현장에서 작명은 조금 다른 역동을 발휘하는데, 특히 ‘컴퍼니’의 메타포는 다방면에서 유효하거나 유용하다. 우선, 회사 혹은 회사가 함의하는 가치, 작동방식, 언어를 작품의 소재로 삼거나 내적 논리로 끌어오기 위해 회사 혹은 브랜드를 흉내 내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한편, 여러 역할을 겸하는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 의지를 발현하여) 작업하는’ 자아와 ‘(수입을 위해 수주받아서) 작업하는’ 자아를 구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회사명을 들이밀기도 한다.[2] 이 두 경우는 멀리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는 유령회사를 다루고 후자는 사업자등록을 한 실제 사업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분된다. 후자는 예술가 자아를 지키기 위해 사업자/노동자 자아를 사업체로 분화하는 절차를 따르는 반면, 전자는 일련의 흉내 내기를 통해 알터 에고로서 유령 회사를 소환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주변의 환경 및 맥락과 작가가 얼마나 역할극에 헌신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이 두 접근을 엄밀하게 분리할 수는 없지만, 우선은 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유령회사 기법은 신비주의와 짝궁이다. 허술하게 짝이 없는 가발로 구별되는 마일리와 한나를 믿는 관객이 있듯, 유령 회사는 특수한 전제 조건과 관용의 정신이 지배하는 자장에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장을 교란할지도 모르는 인격은 등장을 삼간다. 쉽게 말해, 회사-아티스트-자아는 아티스트 토크를 하지 않는다.[3] ‘얼굴 없는 가수’가 성행했던 2000년대에 한 전문가는 주로 발라드 가수가 얼굴을 숨기는 이유로 “TV 출연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을 언급했다. 당시 예능프로그램이 공인들의 망가진 모습이나 유사 연애를 유독 즐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선택이다. 게다가 무대에 서지 않으면 의상, 댄서 등 공연에 투입되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비주의는 홍보할 수 있는 다른 경로를 더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하는 난제 앞에 서게 된다. 조성모, 왁스, 김범수 등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했던 가수 중 대다수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얼굴을 공개하고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TV에 출연하고 행사를 다닌 것은 결국 신비주의가 화제성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걸까?



3. 0000 00 님, 사기 치지 마세요

Serious Hunger는 작가 송민정이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통해 운영하는 반-가상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실물 샵 없이 활동을 공지하고 팔로워와 (최소한의) 소통을 하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존재하는 일종의 유령회사다. ‘과자전’에서 꼭 찾아보아야 할 인기 쿠키 마스터였고, 먹어본 사람이 있기나 하냐는 의심을 몰고 다니는 엄청난 커스텀 케이크 메이커이자 (역시 송민정이 운영했던 계정을 통해 등장한) 프랑스의 카페 겸 잡화점 점주 ‘자끌린’의 친구다. Serious Hunger의 행보가 가능하려면, 농담과 진담을 눈치껏 알아차리는 센스가 필요하다. 송민정은 크레딧에 브랜드와 본명을 병기 – “Serious Hunger (송민정)” – 하거나 두 계정에서 동일한 행사를 소개하는 등 딱히 메소드 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눈치’를 획득할 경로는 열려있다.

하지만 2018년에 벌어진 한 사건은 전혀 다른 측면을 예증한다. 2018년 6월, 송민정은 구글 스트리트뷰로 찾아가 스크린숏 한 장소의 간판을 합성하여 가상의 디저트 숍을 만들고, 그 이미지 10점으로 ‘더 스크랩’에 참여했다(이때 작가명은 ‘송민정’으로 소개된다). 리옹, 로마, 뮌헨, 마드리드 등에 마카롱이 맛있는 Après-midi, 허름한 외관이지만 무시하면 큰코다칠 LUNA’s Dessert shopping Center, 디저트 영화만 선별하여 상영하는 SÜß와 같은 가상의 숍이 들어섰다. Serious Hunger의 소셜미디어에는 이미지와 가게 소개문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굳이 가상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았지만, 실제 주소를 명시했기 때문에 스트리트뷰로 찾아간다면 전부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아닌 저곳에 그런 상점이 있다는 상상이 불러 일으키는 마음과 혹시나 해 스트리트뷰를 더듬으며 찾아갔을 때 전혀 다른 모습의 거리를 보며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피식 웃거나 조금 아쉬워하는 반응이 예상된다. 그런데 갑자기 모 케이팝 가수 팬덤이 등판하여 이 타래는 전부 거짓이고, 작성자 Serious Hunger가 사기꾼이라며 사이버불링을 시작했다. 대규모 팬덤의 화력을 감당할 방어력을 가진 계정은 얼마 없을 것. 결국 Serious Hunger는 글을 삭제하고, “가상의 맛집 타래”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다시 게시했다. 이러한 반응에 팬덤이 화를 거두며 사건은 종결됐다.

Serious Hunger의 활동에 큰 지분을 가진 소셜미디어는 미술관과 같이 물리적, 제도적 제한을 강제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사기행각’을 잡아낸 미술 ‘바깥’의 힘을 차치하더라도, 더 미묘한 오독 – 미술 작가 송민정을 아는 미술계 관계자가 Serious Hunger의 케익은 참여하는 전시의 오프닝을 축하하는 자발적 봉사라고 착각하는 등 – 도 얼마든지 예상 가능하다. 이처럼 Serious Hunger의 반가상성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체인 듯 아닌 듯, 농담인 듯 진심인 듯 적정 오퍼시티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용하는 매체의 모드와 액세스를 통제할 수 없을 때, 지속의 노력은 소모적이다. 그 사건 이후 2년이 지난 요즘, Serious Hunger는 참여한 (주로 미술 관련) 행사를 홍보하거나 N번방 해시태그 총공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4. 반투명 회사의 탈신비화

한편 박보마의 회사 – fldjf studio, WTM decoration & boma, Sophie Etulips Xylang Co. – 는 현실이든 가상이든 그 어디에서든 정확히 무얼하는지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반-가상이라기보다 반-투명한 사업체다. 인테리어, 마사지, 페이크 타투 같은 서비스를 약속하거나 향수, 장신구, 가구 등을 판매하는 박보마의 회사가 동시대미술의 자장 안에 있다는 점은 헷갈리기 어렵다. 때문에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고는 접촉하기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거나, 멀쩡한 척하는 가구 위에 가짜 돈을 만들어 올려 두는 활동에 분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박보마의 사업적 탈선을 허용하는 예술의 장도 송민정이 겪어야 했던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취약하다. 동시대미술어(語)를 구사하는 이들 중에서도 날 것 그대로의 보마어를 독해해내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예술적으로 허용하기로 하지만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더 다가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유령회사를 지탱하는 허구적 설정은 현실세계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 것, 즉 열외로 취급당하고 만다. 망가진 신텍스로 말을 거는 박보마의 유령회사는 수년간 일관된 톤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특기할만한 ‘실천’의 일종으로 인식되는 데까지 왔으나, 그 인식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유령회사에 드리워진 예술적 허용은 최소한의 용납에 가깝다.

이러한 소외를 완화하는 방법은 신비주의를 지양하고, 몰입을 깨는 것이다. 작가가 유령회사가 알아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에 부여된 의미, 의도, 역할을 해설하는 것이다. 회사라는 메타포가 대변하는 남성성과 정신(이데아)이 밀어내버린 여성적인 것과 언어화될 수 없는 물질을 옹호하기 위해 회사 건물 파사드를 위압적인 실체가 아닌 찰나의 빛을 반사할 뿐인 스킨 취급하고 그 속을 흐르는 것, 가벼운 것, 가변적인 것으로 채우고, 그것을 다시 회사라고 명명하곤 했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미술의 장은 허구를 선택적으로 허용하는데, 이는 배후에 치밀한 예술가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역할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명쾌한 해설을 제공할 수 없다면, 예술적 허용의 자장을 누릴 수 없다. 예술가가 자신의 언어를 찾기 전까지는 판단이 보류되지만, 이후에도 실없는 장난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박보마는 탈신비화를 시도한다. fldjf studio로 인테리어를 맡았을 때는 물질과 공간을 긴밀하게 연결하여 무엇이 공간이고 무엇이 공간에 놓인 작품인지 구별되지 않도록 했다면, WTM decoration & boma는 그동안 작업에서 탈각되었던 드로잉의 형태들을 착용 가능한 액세서리로 제작하여 여러 경로로 홍보하고 판매했다. Sophie Etulips Xylang Co.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가짜 돈과 가짜 담배꽁초와 가짜 대리석 등 이전보다 직설적인 메타포를 더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제안한다. 게다가 소개문은 대체로 주술이 호응돠는 ‘멀쩡한’ 문장으로 쓰였다.



5. 유령회사를 위한 xx는 없다

송민정의 Serious Hunger, 박보마가 가진 복수의 회사는 양상을 달리하지만 공통적으로 예술적 허용의 장이 취약하고 협소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소셜미디어의 경우, 미술 실천으로서의 작위적 설정을 ‘허용’하지 않는 힘을 마주할 가능성에 언제나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 실천의 장으로서 온라인 공간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누군가는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일종의 포트폴리오로 보고, 어느 누구는 공과 사를 분리하는 편이 낫다며 협업하는 작가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팔로우를 염탐하는 행위라며 불쾌해하고, 누군가는 비평적 치하로 여긴다. 누군가는 소셜미디어에서 일어난 일을 그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과 같은 정도로 리얼하게 경험하는 한편, 누군가는 눈이 액정을 떠나면 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멈춘다고 믿는다.

이처럼 자장의 불안정성은 유령회사를 유령으로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 가설된 네트워크가 반가상성 혹은 반투명성을 지지해주지 못할 때, 유령회사는 ‘본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매우 선명한 압박을 경험한다. 연차에 맞게 ‘다음 단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효타’의 기회는 실명을 포함한 출신성분을 밝히거나 허구적 설정의 내용과 의도, 예상 효과를 줄줄이 읊도록 한다. 이에 따라 모든 ‘진실’을 밝히고 유령회사를 현실 자아에 편입하거나 합법적인 몸체를 얻는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다.

미술가가 회사 자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유령회사의 기반이 되는 장을 이해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파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핸드아웃에 재치 있는 이름을 적어 넣고, 판촉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 그 이상의 일이다. 나아가 작업의 반경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장하게 된다면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공모에 지원할 때, 작가-자아와 회사-자아 중 어느 시점을 선택할 것인가? 활동명으로 작성한 서류가 통과된다면, 면접할 때 메소드 연기를 고수할 것인가? 프로덕션에 협업자가 개입하게 된다면 그의 크레딧도 회사에 종속시켜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 플레이를 계속할 것인가? 충분히 믿어질만큼 헌신하되 과몰입하지 않는 균형은 어느 지점에 있는가?


6. 옐로우 펜 클럽은 농담하지 않아요

2019년 《옐로우 펜 클럽 리부트 쇼》에서 우리는 과분한 관심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왜 글을 쓰지 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파구는 무엇인지 탐색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더 이상 아무도 속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옐로우 펜 클럽 웹페이지와 계정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이름은 물론 나이, 성별 등 출신 성분을 추측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업로드한 글로만 소통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시공이 날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공석에 얼굴을 드러낸 후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얼떨결에 주어진 상황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어떻게 지키거나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해보기도 전에 현실세계의 강력한 끌어당김을 경험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미술계 프리랜서의 불문율과 김뺘뺘의 글이 좋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진지하기 때문에’ 본명으로 참여하라는 요청. 물론 여전히 필명에 있는 잠재력을 신뢰하는 독자들이 존재하지만, (특히 김뺘뺘의 경우에) 필명과 본명의 거리조절에 사실상 실패한 이상 일종의 농담을 믿어주는 독자의 응원을 연료 삼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를 ‘김뺘뺘’라고 소개하는 것이 철 지난 농담처럼 들릴 때, 옐로우 펜 클럽은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지속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경로는 사업체 설립과 동업 체제 구축이다. 2020년, 출판사 YPC PRESS가 활동을 시작했고, 세 사람의 실무 능력을 합쳐 여성기업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옐로우 펜 클럽 리부트 쇼》 때 ‘응원’으로 ‘윤율리 라이팅 코퍼레이션(Yoonjuli Writing Corporation)’이 업무제휴 협약서를 건넸던 것은 예언적인 구석이 있다. 체결 이래로 업무제휴가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적절한 기회와 상황이 주어졌다면 협약서에 의거하여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했을 거라 본다. 다시 말해, 이 제스처는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의 독자와 클라이언트가 언제나 일치할 수 없다. YPC-사업자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YPC-애독자의 시야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 몸체를 취득하여 가능해진 연결은 필연적으로 본래 원활히 다니던 경로를 끊어놓는다. 반대로, 신비주의와 일종의 역할놀이가 가능했던 자장의 폐쇄는 전혀 다른 장에서의 허용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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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미디빅리그의 코너 ‘수상한 택시’에서 장도연은 택시를 탔다가 기사로 일하고 있는 전 남자친구를 만난다. 대화를 하던 중 장도연이 핸드백에서 마이크를 꺼낸다. 이에 전 남친이 “너는 어떻게 마이크를 들고 다닐 생각을 하냐”고 핀잔을 주자 장도연은 “개그적 허용이라고 하는 거야. 오빠는 그럼 택시라면서 바퀴도 없고 천장도 뚤려있고… 이게 택시라는 거야?”라며 받아친다. 관객은 환호한다. 이렇게 장도연은 ‘개그적 허용’을 주창했다. 엉성하게 좌석과 운전대만 놓고 대사를 치는 희극인을 보고 있는 관객들이 상황과 리얼리티의 격차를 눈감아주어야 꽁트가 성립되듯, 회사 혹은 브랜드를 표방하는 설정이 단순 거짓이 아니라 실천으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허용의 자장 안에 있어야한다.
[2] 이외에도 예술가가 회사를 표방하는 여러 경로가 존재한다. 일련의 협업자와 작업을 지속하고 싶지만 공동의 가치에 투신한다는 뜨거운 메시지보다 한시적으로 야합한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하여 유사회사 아래 모이기도 하고, 의도는 수익 창출이고 대상은 일반 대중이었으나 전략상 실패로 회사인 척하는 미술 프로젝트로 보이는 안타까운 일도 있다.
[3] 장영혜중공업은 1999년에 결성한 이래로 국내에서 딱 한 번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했다.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토크는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있었던 일은 겨우 구전될 뿐이다. 구술사에 조금 기여해보자면, 모더레이터는 “(마크 보주에게) 장영혜는 장영혜중공업의 ‘장영혜’를 맡고 있고, 당신은 ‘중공업’을 맡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마크 보주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 선배로서 작가 지망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냐”는 질문에 마크 보주는 자신의 작업을 믿어주는 큐레이터나 콜렉터 0명(정확한 명수가 기억나지 않는다)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으며 학력 따위 필요없다고 답했고, 이에 장영혜는 그래도 학력은 필요하지 않겠냐며 부연했다.


이 텍스트는 아카이브봄에서 개최된 전시《크림》(2020.7.3. – 7.31.)과 연계되어 작성되었습니다.

  1. 뾰족한동그라미

    좋은 글이네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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