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djf-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기

박보마 혹은 fldjf studio가 연출한 공간은—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미완성의 상태이고, 어디서 본 듯 하지만 결코 정확한 레퍼런스를 짚어낼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가 그 공간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려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갈 곳을 잃고 약간은 음산할 정도의 멍한 느낌만 끈질기게 지속된다. 하지만 그녀는 거듭 자신의 작업을 “서비스”라 칭하며 초대하고 약속한다. 파괴된 신텍스로, 때로는 엉터리 외국어 문장들로. 그렇다면 그 초대에 응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만족도 평가서를 건네는 수밖에.[1]

 

1. fldjf-물질, 샘플, 대체제

“안녕하세요? 리얼스톤 사장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알맞은 크기로 잘라 놓은 돌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리얼스톤 가게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 저는 꼭 ‘샘플’들이 ‘상품’을 위해 앞에서 희생하고 있는 것처럼 자주 느끼는데, ‘샘플’을 전시장에서 샘플이 아닌 방식으로 두고 싶습니다.” (“Silky Navy Skin”에서 선보인 작업 “fldjf material suite 33” 페이지[2] 중)

fldjf studio의 샘플을 마주한 것은 지난 4월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Silky Navy Skin” (@ 인사미술공간, 2016.4.15-5.14)에서 였다. 홍보물에는 박보마를 참여작가로 명시되어 있으나, 그녀는 fldjf studio의 주 서비스 항목 중 하나인 장식을 담당했다. 주 재료 중 하나인 fldjf-대리석은 암석의 질감만 취한 채 묵직함은 휘발 시킨 것을 프린트물이나 스프레이 자국 등의 표면으로 가공한 것이다. 이 외에도 칠이 되어 있는 숨죽인 꽃, 펄이 들어간 흰색 공, 구릿빛 글리터 등이 넘버링 태그와 함께 공간 전반에 걸쳐 있다. 이 아이템들이 그 자체 이상의 것을 지칭하거나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작업의 일부였던 material suite 33의 웹페이지에서 “샘플”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 일종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샘플은 동일한 종의 상품 전체를 대표한다. 누구든 쉽게 만질 수 있지만, 대신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채로 잘 포장된 상품들을 뒤로 하고 혼자만 봉인이 뜯겨있다. 진짜 상품을 대신하여 끊임없이 소진되는 자리에 놓인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다른 상품들과 다를 것이 없으나 더 이상 본연의 기능대로 쓰일 수 없다. 이처럼 fldjf studio가 제공하는 fldjf-물질은 “리얼”한 대상과 동일한 외형을 지니며 이를 대체하는 것으로서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material suite 33이 샘플이 통용되는 맥락과 다른 점은 그것이 대체하고 있는 리얼한 대상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에뛰드 하우스에 갔는데 판매 상품들은 싹 다 사라지고 샘플과 포장지만 나뒹굴고 있는 풍경에 가까울 것이다.

이처럼 fldjf한 것은 대체하는 그 무언가가 사라진 곳에 자리 잡은 대체물이다. 말려있는 종이들은 무언가의 복사본 같지만 원본이 무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샘플을 낭비할 수는 있지만, 값을 주고는 살 수 없듯이, 벽에 기대어 있거나 바닥에 널부러진 얇은 것들은 잔뜩 소비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장식 아이템들은 임대한 것, 값을 알 수 없는 것, 샘플 아이템, 사본들, 광고 이미지로 제작된 것, 포장지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그러니 얇고 거친 리본의 질감이 길을 안내해주면 가벼운 글리터 입자를 밟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값을 환산할 수 없고, 그러니 제값을 지불할 수도 없는 스위트에서, 언제든 오라고 하지만 막상 다가가면 붙잡히지 않는 서비스를 사치스럽게 소비하면 된다. 대리석 말고 대리석 벽지처럼 가벼운 것, 구리판 말고 구리빛 스프레이를 바른 얇은 평면 같은 것을 원한다면 “our <시장 최소 물질> we miss you happㅛ. qr코드로 우리 회사의 광고를 ghkrdlsgk세요 !”라는 홍보 문구에 반응하면 된다.

 

2. fldjf-초대, 코드, 흉내내기

무게나 두께는 휘발되고 표면만 남은 풍경에 fldjf studio가 흩뿌려 놓은 공수표가 나뒹군다. fldjf studio의 활동은 웹페이지에 차곡차곡 정리가 되어있다. (더 정확하게는 그 페이지들 자체가 그의 작업이다.) 2015년 탄산에서 소개했던 작업인 “VILLA-A”는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형을 띈 홈페이지이다.[3] 지중해를 내다보는 쾌적한 장면들과 서비스를 설명하는 문구들이 기본 제공 탬플릿 중 하나에 얹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플드즈프이다. 우리는 당신의 뒤에 있어요. 우리는 당신을 위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되게 럭셔리 했잖아.” 자동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홍보 문구가 대문에 쓰여 있다. 투숙객들의 피드백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빈칸에 연한 글씨로 들어간 디폴트 문구—“나는 시범용이다. 나를 클릭하고 수정해라. 글을 더하여 당신과 당신의 서비스에 대한 좋은 것을 표현해라. 당신의 고객이 당신이 얼마나 멋진지 그들 친구에게 후기를 남기도록 해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용된 이미지는 “휴양지” 혹은 “바캉스” 같은 것을 검색하면 바로 나올 법한 전형적인 것들이다.

이렇게 fldjf studio는 서비스를 이용해보라며 불특정 다수를 초대하지만 기존의 서비스 개념과 연관된 코드들을 전면에 배치하거나, 노골적이되 삐걱대는 언어를 통해 fldjf-약속들을 남발한다. 특히 fldjf-체는 막 언어를 습득했으나 사회화가 덜 되어 코드화된 어휘를 짜깁기하는 것이 최선인 fldjf-인간이 리얼 인간을 흉내내는 말투 같기도 하다. 전형적인 어휘들이 신텍스 오작동을 거쳐 쏟아져 나온다. 때문에 이 문장들은 실제 욕망을 호명하지 못한다. “네가 원한다면…여기 하얀 벽에 우리의 타일을 핥아… 우리는 너무나 투명해. .사랑해… 문의 콜”[4] , “cooper silk (men 1/n) / now / wants you / in the building / you in.”[5] , “YOU KNOW, NOW YOU ARE MY SUNSHINE … 매번 회사에 / 들어가서 / 그대로 보여주고 / 벗고 까서 이렇게 / 가져다 주고 / 약간 굽어서 / 뒤에 안 봐서”[6] 와 같이 유혹하는 돌직구도 예외는 없다. fldjf-서비스는 약속은 하되 실체 있는 만족감을 주지 않고, fldjf-초대장들은 명백하게 유혹하려는 수사를 사용하지만 의심스러울 뿐이다. 하나의 공수표를 또 다른 공수표로 메꾸기를 반복한다.

fldjf-초대가 리얼한 초대를 기묘하게 비틀고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 같지만, 리얼한 것들 중에 흉내내기가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리얼 언어의 습득은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포장지에 불과한 말들을 앵무새마냥 따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 번도 발화된 적 없는 문장을 말한들, 그것은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된 약속들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결국 코드를 따르고 반복하는 것의 문제이다. 우리가 더 그럴듯한 언어를 구사하여도 마찬가지일 테다. 다만 fldjf한 언어는 기생하고 흉내내되, 중심 없이 공회전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 언어와 다를 뿐이다. 이렇게 납작한 말이 새겨진 평면으로부터 기이하게 증폭되는 경제가 발현된다. 책임지지 못하면서 쓸모없는 것을 사치스럽게 소비하는 시장이 열린다. 얇은 프린트물들은 마치 마주보는 거울 두 장이 서로를 끝없이 반사하며 낭떠러지를 만들어내듯이, 까딱하면 추락하고 마는, 과잉과 잉여로 넘쳐나는 틈새를 벌린다. 기존의 재화와 욕망의 교환 경제를 교란시켜버린, “–인 것”이 아니라 “–일 법한 것”들만 남은 그곳에서 혹자는 속았다며 성을 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속을 일은 한참 더 남았다.

 

3. fldjf-관계, 시선, 빛

fldjf-물질이 그러했듯이, fldjf studio의 서비스가 제공하는 fldjf-관계들은 “초대하기—응하기—약속된 관계로 들어가기”의 과정에서 표피만을 취한다. 가장 리얼한 현전, 즉 박보마 작가의 몸이 개입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fldjf-관계는 직접적인 접촉이나 만족이 아니라 교차하는 시선에 한정된다. “BCSM of SLSM Touching Massage SVC” (@ 아트선재 오프사이트, 2016.11.9-11.15)는 사전에 예약한 소수의 사람만 박보마가 조성 해놓은 공간에 30분간 머물 수 있는 서비스였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면 카운터에 리셉셔니스트 박보마가 앉아있다. 관객은 정해진 시간 동안 바닥에는 머리 고무줄, 찌그러진 종과 같은 것이 놓여있고, 벽에는 리본이 무심하게 붙어있는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며 사물을 만져볼 수 있었다. Lucy라는 핑크색 향수, 그리고 “… 돈을 대가로 가져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돈을 내지 않고 물건들을 가져왔”던 이야기들이 담긴 서비스 안내서를 읽도록 안내되었다. 리셉셔니스트는 데스크에서 십 원짜리 동전을 허공에 던지거나 이따금 벽에 알코올향 진한 향수를 뿌리고 벽이나 허공에 손가락을 문질렀다.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고, 퍼포먼스 도중에는 말을 삼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 공간에서 십 원짜리는 돈이 아니라 구릿빛의 납작한 아이템일 뿐이고 직접적인 “터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리셉셔니스트의 역할을 자처한 박보마의 몸은 사물이나 손님들과 관계를 맺기보다는 오브제 중 하나로 전시된다. 다만 매우 신경이 쓰이고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끌면서 집중을 분산시키는 오브제였다. 내가 그녀에게 준 시선은 되돌아오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지고 만다. 3명의 손님들이 공간을 거니는 모습은 작은 책상 위에 놓은 카메라에 담긴다. 매개되고 교란된 시선이 거래되는 현장이다.

그렇게 공간을 차지하는 그녀는 명백하게 여성이다. 이러한 시선의 기묘한 흐름들을 만든 것도, 명확히 지칭하기 힘든 야릇한 공기를 조성하는 것도 여성으로서 그녀의 몸이다. 그녀의 여성성은 “Summer Debris”[7] 에서 과잉되어 터져 나오는 양상을 보인다. 비치면서도 반짝이는 원단으로 만든 몸에 잘 붙는 드레스는 장식적으로 여성성을 재현한다. 두 퍼포머들은 광화문 거리를 활보하기에는 다소 과할 만큼 “여성”을 입었다. 일반적으로 “예쁘다”고 말하기 힘든 미감을 연출했지만 광장을 활보하는 퍼포머들이 입고 있는 여성성의 기표에 일방적인 시선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 시선들은 퍼포머들의 눈을 향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뒷모습이나 실루엣에 얼마간 달라붙어 있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급히 튕겨나간다. 그녀들이 여성성의 코드 그 자체로 광화문 광장을 거닐자, 시선들의 방향과 질서가 일시적으로 불균형의 상태가 된다. 아니면 이것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원래의 질서일지도 모른다. 시선이란 빛과 같아서, 어딘가에 담아서 보관하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진하고 반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일테니까. 이처럼 fldjf-관계들은 면과 면이 맞대거나 서로 교환되는 것이기보다 굴절되고 튕겨 나가는 빛의 물질성을 지닌다.

 

4. fldjf-만족도 평가, “만족”을 반사하기

박보마의 fldjf은 “리얼”한 것을 향하지 않는다. fldjf studio의 파생 상품들인 fldjf-물질, fldjf-초대, 그리고 fldjf-관계는 리얼한 것들의 샘플이자 그럴듯한 것, 또는 빛처럼 교환되고 어지러운 질서 안에 갇혀 있을 뿐, 다른 목적을 표방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 방식에 가깝다. 이 때문에 그녀의 시공간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종종 취향의 문제로 치부된다. 어떤 메시지가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름의 어휘들로 풀어낼 수 있는 소통의 구조에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어떤 미감, 특유의 정서가 작업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이다. 그러니 fldjf한 것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없지만 알겠다 하면 아는 것이고 모르겠다 하면 모르는 것이 된다. 다만, 진짜도 가짜도 아닌 상태에서 그 둘을 동시에 가로지르면서 끝내 소유하지 않은 채 빌리고 훔치면서 취하고, 설정된 무대임을 알면서 즐기는 이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적절한 시공간으로 현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공허하거나 심지어 위협적인 존재 방식으로 엄습해온다.

그렇다면 fldjf studio의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어떻게 평가해볼 수 있을까? 박보마는 스스로의 작업을 서비스라고 자처할 때, “작가-작업-관객-경험”을 “판매자-상품-고객-서비스”의 경제와 포개서 볼 수 있게 된다. 아니, 우리는 어쩌면 박보마의 작업이 이 지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기 이전부터 이러한 경제 속에서 작업을 대하고 전시를 보는 것이 익숙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산품을 소비함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만족이나 각종 서비스로부터 기대하는 바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겠지만, 전시를 보러 시간을 내고 찾아가는 수고를 하는 데에는 충족되기를 원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보마가 fldjf studio를 경유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는 충족감을 주지 않는 듯하다. 울퉁불퉁하고 기묘한 경제 속의 서비스. 현혹하는 메시지는 깨져 있고, 고객을 굳이 매끄럽게 만족시키지 않는 샘플들. 욕망을 자극하는 대신 굴절되거나 튕겨 나가는 문구들. 내용 없이 다른 약속들로 재빠르게 대체되는 초대. 그 앞에서 만족도라는 것 또한 fldjf한 것이 아닌 이상 이 서비스에 대응되기 어렵다. 즉, fldjf-만족도는 리얼하고 충만한 경험을 대체하고, 흉내 내며, 굴절하여 되돌려주는 경제를 발견하는 것, 그리하여 리얼한 것들을 납작하게 의심하는 순간에 스며오는 것이 아닐까. 전시라는 서비스로부터 무엇을 기대했는가? 박보마의 몸이 무얼 해주기를 원했는가? 어떤 공백을 메꾸기를 욕망했는가?…

 

[1] 박보마 및 fldjf studio의 작업은 다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박보마의 작업을 접한 적이 없다면 글을 읽기 전에 홈페이지를 먼저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fldjfs.wixsite.com/qhak

[2] http://fldjfs.wixsite.com/qhak/material-suite-33-silky-navy-skin

[3] http://fldjfs.wixsite.com/villa-a

[4] “fldjf 투명 타일 빛 기포 6”(“Void”, MMCA, 2016.10.12-2016.2.7)에 쓰인 문구

[5] “fldjf Material Suite 33” 장식물 중 하나의 표면에 쓰인 문구 (http://fldjfs.wixsite.com/qhak/ad-light-covers-33)

[6] “purple neon(+) ~ nude reflection(-) ~ white ray(+)” (5TH Video Relay TAANSAN, 2016.8.23) 중 상영된 박보마의 영상 자막 중 일부

[7] 2013년에 fldjf studio가 기획한 퍼포먼스. 백수현 작가가 촬영 및 편집한 결과물은 백수현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fakeorchidbecky.tumblr.com/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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