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뺘뺘의 일에 대하여

1. 김뺘뺘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작가도 기획자도 아닌 김뺘뺘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미술계의 주변에서 일을 해왔다. 미술관에 다니는 취미가 있었던 그는 우연히 한 미술관에서 초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김뺘뺘는 여기저기에 소환 되었고, 그렇게 그는 주로 “코디네이터”나 “통역가/번역가” 정도로 불리면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김뺘뺘는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미술계가 그를 자꾸 찾아주어 나름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지쳐갔다. 놀라운 스피드와 무조건적인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던 그는 언젠가부터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2. 김뺘뺘는 많이 울었다

2.1.

김뺘뺘는 한 미술관에서 면접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코디네이터” 자리라고 한다. 영어를 잘하냐고 물었고, 할 줄 안다고 한다. 담당자는 일주일에 2-3번 출근하면 되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대로 도우면 된다고 한다. 출근할 날짜를 미리 정해놓고 이에 따라 일당을 계산해서 프로젝트가 끝나면 지급해주기로 한다. 김뺘뺘는 학교도 다녀야 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있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기로 한다. 김뺘뺘는 약정서에 서명을 하려다가 “[“을” 이] 업무에 불성실하거나 해당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될 때” “[“갑”은] 약정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발견하고 해당사항이 있을까봐 괜히 긴장하기 시작한다. 김빠빠는 출근 첫 날부터 정신 없이 일을 한다. 주로 텍스트 교열이나 이메일로 참여 작가들의 스케줄 등을 조정해주는 일이다. 그런데 예정된 업무시간은 지켜지지 않는다. 출근을 한 날에는 점심시간을 1시간 다 쓰지 못하거나 자연스럽게 2-3시간 더 늦게 퇴근하는 것이 당연하고, 퇴근을 하다가도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연락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오프인 날에도 메일이 수 통씩 쏟아진 다.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한밤중이라도 문자나 전화가 온다. 어쩔 수 없이 김뺘뺘는 출근 일수와 상관없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김뺘뺘는 팀 사람들이 전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원래 그렇게 일하는가 보다 하고 덩달아 열심히 일한다. 원최 긴장이 많고 예민한 김뺘뺘는 모든 일을 실수 없이 빠르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탓에 지독한 과민성 대장염에 시달려서 3kg이 빠지고 탈모증상이 생긴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때쯤엔 모두가 그런 김뺘뺘를 보고 일 참 잘한다고 예뻐해 준다. 업무 종료 후 몇 주가 지나 급여가 들어온다. 추가 근무시간에 대한 지급은 당연히 없다. 간혹 급하니 택시를 타고 오라는 지시를 받을 때마다 김뺘뺘는 바보 같이 업무상 지출로 계산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럴 일은 없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뺘뺘는 실수로 중요한 원고를 불태워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혼이 나고 다른 나라로 추방당하는 꿈을 꾼다. 악몽에서 깨어난 김뺘뺘는 울면서 다시 잠을 청한다.

 

2.2.

규모가 꽤 큰 프로젝트에서 통역 요청이 들어왔고, 금방 미팅이 잡혔다. 담당자들은 김뺘뺘에게 통역 경력이 있느냐고 묻는다. 김뺘뺘는 이런 저런 것을 해왔다고 알려준다. 이어서 담당자들은 두 달 후에 시작될 행사의 개요와 일정을 소개해준다. 들어보니 한 강연이 며칠씩 이어지는 일정이라 체력적으로 강행군일 뿐더러 다른 일을 잡 을 때 큰 제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뺘뺘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퍽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서로 긍정적인 말들이 오갔다. 원래는 강연 한 꼭지를 요청하려 했다는 담당자는 하나 더 해주십사 부탁을 하고, 김뺘뺘는 흔쾌히 알겠다고 한다. 통역비로 어느 정도 지급해 줄 수 있는지를 언급할 때, 김뺘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그 시즌의 수입과 수출 내역의 흐름을 대충 예상해 본다. 김뺘뺘는 그 정도면 괜찮겠다고 말 한다. 담당자는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김뺘뺘는 스케줄러에 사전 준비기간과 행사 일정을 기록한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얼마 시간이 지나 행사 기간이 다가왔는데 별 연락이 없다. 김뺘뺘는 다들 바쁘시겠거니 하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주요 정보를 얻는다. 행사 열흘 전이 되자, 더 이상 기다릴수만은 없었던 김뺘뺘는 강연 스크립트와 강연자와 사전미팅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다. 일주일 동안 답이 없다. 행사 시작 이틀 전 밤, 기다렸던 답장을 받는다. 담당자 1은 통역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으니 이해해달라고 한다. 갑자기 아찔해진 김뺘뺘는 이 행사에 맞추느라 한 달 일정을 전부 조정했는데 이건 말이 안된다고 항의한다. 그랬더니 담당자 2는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지만 일전에 있었던 미팅에서 세부사항이 픽스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뒤이어 담당자 1는 스케쥴 변동이 김뺘뺘님께 큰 손실을 입히는 상황이라면 죄송스러우며,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행사도 취소하겠다고 한다. 마침 본가에 내려가있던 김뺘뺘는 문을 걸어 잠그고 많이 울었고, 그의 어머니가 자꾸 왜 우냐고 추궁하시는 바람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서울로 올라와버리고 말았다.

 

3. 김뺘뺘는 생각했다.

많이 울고 난 김뺘뺘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질문을 던지고 난 김뺘뺘는 오히려 힘이 빠진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끝도 없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손쉬운 것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일 테다. 김뺘뺘는 특히 상대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곱씹으며 그들만 피하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속좁은 그의 미움을 사지 않고 용케 살아남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뿐이다. 그러다 김뺘뺘는 사람을 미워할 일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똑똑한 생각을 해낸다. 하지만 기준이 될만한 옳은 모델을 경험한 바가 없는 김뺘뺘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인물이라 보기 어렵다. 적당한 노동 환경이란 어떤 것이고, 임금 수준의 적정선이 어디에 그어져야 하는 것인지의 문제는 매번 다른 환경에서 다른 업무를 수행해오면서 지급 받은 금액도 들쭉날쭉했던 김뺘뺘 혼자 풀기에는 역부족인 것들이다. 아, 이것이 헬조선의 단면인가? 내가 바로 말로만 듣던 고통 받는 청년세대인가? 하고 김뺘뺘의 생각은 국가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러다가, 결국 생이 고통입네, 인류가 잘못했구려 하며 우주로까지 뻗어나간다. 그리하여 김뺘뺘의 불편은 가시지 않는다. 단지 이겨내기 힘든 어떤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굳이 형식을 부여해보자면, 누군가가 당연하다는 듯이, 악의 없이(심지어 선한 의도로) 건네는 말 몇마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1. “이 일이 뺘뺘씨 커리어가 큰 도움이 될 거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김뺘뺘는 미술계에서는 근무시간이나 임금과 같은 일의 기본 조건보다 기관이나 상사, 프로젝트의 내용과 같이 일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더 중요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뺘뺘는 이런 태도가 싫지 않았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는 것 같다는 낭만에 젖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김뺘뺘는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 무턱대고 그에게 이 일이 그의 커리어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꽤 만나게 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김뺘뺘에게 중요한 경험이 될지의 여부는 김뺘뺘 스스로 판단할 영역이었지만 그에게 일을 시키려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에게 최선인지를 정확하게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후에도 김뺘뺘는 근무 태도나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지나치게 자주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하라는 일을 제 시간에 하는 것 이상으로(기본적인 업무 강도 자체가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넘어가자), 결과물의 퀄리티가 매번 평가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뺘뺘는 할 일이 합의된 상태에서 근무를 한다기 보다 스스로를 쥐어 짜서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를 보이는 오디션 쇼에 참가한 것마냥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과잉성실은 좋은 평판으로 보상 받을 것이고, 좋은 평판은 탄탄한 커리어로 연결될 것이니 추가 임금 없는 야근이 자연스럽고 뭐든 적극적으로 하려는 태도가 디폴트이다. 그러니 김뺘뺘는 실제로 일을 한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지쳤다.

근무 기간이 끝났다. 프로젝트가 끝나야 정산을 하고, 그제서야 지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몇 주, 혹은 몇 달 간 일을 하고 한참 후에야 임금을 받는다. 이런 시스템은 스스로 벌어서 매달 관리비 내고, 밥 사먹고, 책 사야 하는 김뺘뺘에게는 치명적이다. 프로젝트가 꽤 길게 이어지는 경우에는 월 단위로 정산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김뺘뺘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때가 대부분이다. 김뺘뺘의 피해의식이 반영된 느낌일 지는 모르겠으나, 초단기(6개월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경험 삼아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 일이 어떤 의미에서 김뺘뺘의 향후 커리어를 밝혀줄 것인지를 설파했던 이들이 지급 방식이나 시기를 조정해주려는 노력에는 그만큼의 열정을 쏟는 것 같지 않다. 물론, 관계자들도 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에 김뺘뺘는 많이 참는다. 지난 프로젝트에서 지급을 못 받은 상태로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일을 하는 중에 생활비가 떨어질 때면 김뺘뺘는 커리어고 뭐고 돈이나 제때 받았으면 싶다. 김뺘뺘는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완전 빈털털이가 되었으니 빨리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혹시 지급은 언제쯤 되는지 여쭈어도 괜찮겠느냐고 쭈뼛댄다.

 

3.2. “뺘뺘씨, 우리 일정이 불확실하니까 이번 달이랑 다음 달 모두 비워두세요.”

김뺘뺘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이 모든 것을 대비하기 위해 스케줄을 통째로 비워놓으라는 식의 요구를 일상적으로 받는다. 이렇게 마치 김뺘뺘가 당신들만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줄 아는 관계자들의 태도는 결코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선택을 내릴 때 결정적인 요소들을 아주 모호하게 소통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예를 들자면 “급여는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에요” 라든지 “근무는 6월에서 9월 사이에 끝날 거에요” 같은 말 들이다. 100만 원과 200만 원 사이에는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고, 6월과 9월의 간격에는 학업과 개인사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들이 걸려있으므로, 김뺘뺘는 이런 말들이 빈칸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해프닝처럼 의뢰가 들어오고 미팅까지 마친 이후에도 일이 취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니 김뺘뺘는 언제라도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남아도는 렌탈장비 정도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했다. 번역 의뢰가 들어올 때, 김뺘뺘가 데드라인을 물으면 “최대한 빨리”라며 모호하게 압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뺘뺘가 밤낮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번역 기계쯤인 줄 아는가보다. 사전에 언질이 있었거나 몇 줄 안되는 분량이라면 그러려니 하는 김뺘뺘이지만 무리한 분량을 “간단한 글”이라며 촉박하게 부탁하는 경우는 일관되게 거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기관/프로젝트치고 웃돈을 얹어주거나 제때 지급이 되는 곳은 얼마 없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의뢰가 쏟아지는 덕분에 김뺘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당장 일이 많이 들어오는 건 좋지만 각 건의 지급 액수가 많지도 않고, 언제 지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는 앞으로 일이 들어올지의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꾸역꾸역 동시에 두 어 가지 일을 하는 때도 있다. 그런 김뺘뺘는 항상 담당자들의 눈치를 살핀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계약된 근무시간 외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을 편하게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김뺘뺘는 코디네이터가 자신과 같은 열정과 헌신으로 프로젝트를 꾸려가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담당자들을 많이 만났다. 기획 내용에는 개입할 여지도 없고 단순 실무를 위해 투입된 김뺘뺘에게 그런 기대는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따름이다. 물론 오프닝이 다가올 때는 개인 일정까지 전부 비우는 정도의 기본은 탑재한 김뺘뺘이다. 하지만 김뺘뺘는 추가근무 수당도 책정되지 않았으면서 왜 이리 바쁘냐고 볼맨소리를 하거나 정시퇴근할 때 어디가냐고 눈치주는 담당자 앞에서 여전히 당황하고 만다.

 

3.3. “뺘뺘씨, 크게 힘든 일은 없고 필요한 일들 도와주시면 됩니다.”

김뺘뺘는 몇 차례 코디네이터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그게 정확히 뭐하는 직업인지 헷갈린다. (직업이 맞기는 할까? 아무래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아무도 김뺘뺘에게 코디네이터가 무얼하는 사람인지 알려준 적이 없고, 계약서에도 담당 업무가 적시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투입되는 프로젝트마다 하는 일이 너무 달라서 경험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다만 김뺘뺘가 발견한 공통 분모는 담당 큐레이터가 시키는 일을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다 김뺘뺘가 상대적으로 어리고 실무 경험이 적다는 사실까지 개입하면, 사실상 인턴이랑 다를 것이 별로 없다. 다만 코디네이터는 인턴보다 직위가 더 모호해서 근무활동이 비교적 더 불안정하다는 차이가 있다. 정시 출근을 요구하면서 지정 자리나 컴퓨터를 제공하지 않아서 김뺘뺘가 개인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적당히 알아서 자리를 찾아다닌 일도 종종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업무환경은 물론 세부적인 근무 내용도 불확실 때가 대부분이다. 특히 일당을 받고 일을 하는 경우에 사용자들은 해당 시간 동안 김뺘뺘의 모든 스킬을 최대치로 끌어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루에 6-7만 원 정도를 주며 종일 번역을 시키는 통에 몇 십만 원 어치를 해내고 퇴근한 날 김뺘뺘는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은 번역 못하겠다고 해야지, 하며 출근을 하지만 일이 뻔히 보이는데도 시키는 일을 거부하기란 쉽지가 않다.

게다가 김뺘뺘의 경우처럼 코디네이터의 나이가 어릴 경우에는, 엄연히 그에게 일인 것을 교육으로 착각 하는 담당자들을 만나게 된다. 김뺘뺘가 지난 경험을 통해 이미 능숙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도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다며 재교육을 시키려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계약상으로 김뺘뺘(“을”)는 필요한 업무를 진행하는 외부 인력일 뿐인데, 이상하게 “갑”님께서는 김뺘뺘에게 가르침을 주는 시혜를 베푼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정작 체계적으로 지시를 받아야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아서 잘 해내는 것도 능력이라 갈음하니 김뺘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당황스럽다. 이렇게 담당 큐레이터는 회사의 상사와 학교의 선생님을 기괴한 형태로 결합시킨 역할을 수행하고, 김뺘뺘는 부하 직원과 학생을 넘나들며 상황에 맞게 태도를 변경한다.

 

3.4. “뺘뺘, 이 동네는 말이 정말 빨리 돌아.”

이쯤되면 김뺘뺘가 바보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왜 김뺘뺘는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걸까? 물론 김뺘뺘도 그동안 지급명령 신청 절차를 알아보기도 하고, 직접 만든 견적서 양식에 취소 수수료 조항을 넣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자 궁리를 했고, 결과적으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의뢰를 거절하는 일이 많아졌고, 황당한 만행에 대해서는 강력한 항의를 한 적도 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뺘뺘는 여전히 모종의 자기 검열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매년 대학의 미술 관련 학과들은 졸업생을 내보내고, 이로써 불안정한 자리를 충원할 인원은 늘 충분하다. 김뺘뺘는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일꾼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조건보다 소문이 빠른 동네라는 것을 스스로 강조하는 미술계의 미시적인 특성이 김뺘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누구와 일을 해보니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더라” 혹은 ”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더라”는 이야기는 실제로 순식간에 퍼진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김뺘뺘는 그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섬뜩하다. 이런 두려움에 대해서 고백하는 김뺘뺘에게 돌아오는 위로는 실력이 있으면 조금은 까다로워도 용납이 될 것이고, 소문이 빠른 만큼 일 잘한다는 말도 빨리 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김뺘뺘가 이제까지 해온 일이 날카로운 비평적 관점을 필요한 것도 아니요, 대단한 스킬을 요하는 것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아이디어를 내도록 하거나 진행을 일임하지도 않은 말단 코디네이터가 일을 잘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말이 돈다는 것 자체가 김뺘뺘에게는 위협적인 일로 다가온다.

 

4. 김뺘뺘는 또 일을 할 것이다.

이제 김뺘뺘는 어디로 가야할까? 김뺘뺘 같은 위치의 사람들은 기관에 큐레이터로 취직을 하거나 독립 기획자가 되려하는 중간 단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니 지금 하는 일들은 궁극적으로 어떤 다른 위치로 가기 위한 과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문제는 국공립 및 사립 미술관의 채용 시기, 인원, 그리고 기준은 들쭉날쭉이라 언제쯤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존 독립 기획자도 고전하는 상황에서 기획 경력이 없는 김뺘뺘가 기금을 마련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수입까지 챙길 수 있는 상황은 당분간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뺘뺘는 향후 몇 년 간은 계속 이 렇게 일을 해야할 것이다. 물론, 김뺘뺘는 불안정한 환경의 수혜자로서, 풀타임으로 근무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다양한 경험치를 쌓는 동시에 학업도 병행하고 생계도 큰 무리 없이 꾸려왔다. 다만 김뺘뺘는 동료들과 함께 조금씩 지쳐갈 따름이다. 전시가 준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처해야 할 변수가 많고 유연한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조금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김뺘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 유연성이라는 것이 김뺘뺘처럼 애매한 위치의 사람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변수들에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유연성은 결국 일정한 상식이 지켜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험한 일도 꽤 많이 당해봤다고 자부하는 김뺘뺘는 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최저의 선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소위 관행이라 하는 것은 김뺘뺘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천박한 지평에서 형성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김뺘뺘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용기를 내서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때,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보다는 진심으로 죄송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생각해보면, 김뺘뺘의 지위가 불안정한 것만큼이나 “원래 그래왔다”는 것들 또한 거품 같은 것들이라서 생각보다 쉽게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김뺘뺘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노출될 때, 새로운 상식의 선이 점진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 김뺘뺘는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서포트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좋은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서 기금과 장소를 마련하느라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 좋은 기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몸 사리지 않고 집중하는 것. 그런 장면을 생각할 때 김뺘뺘의 뒷목이 괜히 찌릿해진다. 실제로 김뺘뺘는 기꺼이 금전적인 손해를 보면서 작업에 참여하거나 기준 요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번역일을 기꺼이 떠안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김뺘뺘가 얼마간 미술계에서 일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하다면 댓가를 바라지 않고도 나를 빌려주고 싶은 동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다만 김뺘뺘의 진정한 동력이 될 수 있는 “좋은 작업”, “좋은 기획”, 그 리고 “좋은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김뺘뺘뿐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의 기본적인 조건이 나아지길 바란다는 것이 곧 일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동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김뺘뺘는 이제 웬만해서는 본인에게 도움이 될 일을 김뺘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기묘하게 주어를 바꿔치기 하는 속임수에 잘 속지않는다. 하지만 그는 무어라 규정하기 힘든 그때 그때의 좋음들에는 자꾸 속아주며 떠나지를 못한다. 김뺘뺘의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이상 울지 않기를. 지치지 않고 이 시간을 견뎌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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