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PC x CREAM] 쇼케이스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2015년 가을, 세종문화회관의 떠들썩한 공기는 SETEC이나 AT센터(두 곳 모두 <서울 코믹월드>의 개최지이다)의 경험을 쉽게 떠올리게 했다. <굿-즈>의 기획은 <E3>이나 <원더 페스티벌>과 같은 서브컬쳐 판매전으로부터 모델을 취했기 때문에 서브컬처 판매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코믹월드는 그저 매매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만은 아니다. 동인 플랫폼의 발달로 웹발행이나 위탁통판도 어렵지 않아진 상황에도 굳이 먼 길을 떠나 꾸역꾸역 시끄러운 행사장을 찾는 이유는 이 특수한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동족’으로서의 연대감이다. <굿-즈>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판매자의 공간조차 제대로 구획되지 않은 다소 혼란한 동선 속에서 생산자-소비자, 판매자-구매자, 작가-관객의 대립항은 완화된다. 세종문화회관은 외부와는 임의적으로 유리된 놀이 공간이 되었고 그 속에서 일종의 역할놀이가 벌어진다. 이 놀이터에서 이루어진 날카로운 첫 판매와 첫 구매의 기억이야말로 <굿-즈>가 남긴 가장 큰 자국이었던 것은 아닐까.

2017년 새로운 판매 행사들이 <굿-즈>의 어떤 것을 이어받아 속속들이 등장했다. 대안적인 미술 마켓의 유통방식을 고민하는 판매 행사들의 등장은 다종다양한 이유에서 더 이상 <굿-즈>의 무대를 재연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더 이상 작가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없는, 그리하여 작품의 ‘세일즈’를 플랫폼이 책임지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상업 갤러리처럼 전속 작가를 두거나 철저한 맥락화를 통한 세일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대신 적절한 쇼케이스와 시스템이 매개자로 등장해야 했다. 굿즈가 새로운 판매와 구매의 경험을 만들어냈듯이, 각각의 전시는 저마다의 룰을 만들어내고 관객이 이 룰을 수행하는 절차를 치르게 함으로써 체험의 요소를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그 체험 자체가 전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실 어쩌면 쇼케이스 안에 든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17년, <취미관>은 일본 오타쿠 시장의 중고샵 <만다라케>의 렌탈 케이스의 형태를 차용한 전시-판매공간을 선보였다. 규격화된 유리 장식장 안의 공간을 작가에게 배정하고 그 안을 작가가 원하는 대로 구성할 수 있는데,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소장품, 부산물들을 배치하고 가격을 매기며, 관객들은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전시장이자 쇼케이스로서의 장식장 안을 톺아보고, 원하는 상품의 번호를 적어 계산대로 향하면서 간소화된 구매의 절차를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2017년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디스플레이의 공간성을 변형시켜온 <pack>은 <취미관>처럼 진열장을 판매의 매개로 삼았다. 이제는 <pack>의 상징이 된 매끈한 유리상자는 하나하나가 일종의 화이트큐브로 작동하며 작품-상품을 진공상태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 큐브는 작가를 포함한 외부적 요소를 차단하고, 오롯이 작품과 관객이 대면할 것을 추구한다. <pack>이 첫선을 보인 <pack F/W 2017>에서는 견고한 큐브의 자물쇠를 따고 엄숙한 조명 아래 포장하여 자물쇠와 열쇠까지 제공하는 다소 과장된 구매경험을 제공하였다.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지만 첫 미술-구매 기억으로는 잊지 못할 체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한편 <PERFORM>(이하 <퍼폼>)을 ‘비물질적 예술’로 자신의 장르를 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016년 첫 행사를 시작한 이래로 여러 특이한 판매모델을 실험해온 <퍼폼>은 2019년 <Linked-Out>에서 본격적으로 ‘시간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의 시장영역을 구축’할 것을 내세웠다. 이 전시에서는 비물질 작품을 규격화하여 유통자로서의 플랫폼이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작가의 부재 상태에서도 관객이 향유하고 구매할 수 있는 마켓 모델을 제안한다. <Linked-Out>의 기본 절차는 ‘예술 카페’를 표방하는데, 관람을 원하는 작품을 주문하면 스탭이 테이블에 이를 전달하여 감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본래 집단적으로 관람하는 것이 일반적인 퍼포먼스 아트에 개인적인 취사선택의 기회를 주려 하는 한 시도로서 의미가 있겠지만, 역시나 작품이 ‘서빙’되고 시연되는 연극적 과정은 다소 과장된 관람의 절차로서 감상의 행위 자체를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다.

그런데 <취미관>에서 구매의 절차는 실로 쾌적해지고 재미있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작품의 선택은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그저 가격표와 오브제로 채워진 유리 케이스 앞에서 이 작품이 놓인 맥락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으며, 나아가 소비자로서 이 가격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지우기 힘들다. 이 지점에서 <만다라케>와 <취미관>의 동학은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만다라케>에서 소모되는 것은 철저하게 세분화된 기호들의 조합이다. 단지 오브제의 외견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이 투명한 상자 속에 나열되어있는 어떤 오브제를 굳이 선택하는 데에는 이 오브제가 모델로 삼고 있는 어떤 작품/캐릭터/장르에 대한 선행적인 이해와 선호를 바탕으로 한다. 결국 <만다라케>에서 구매하는 것은 오브제 자체가 아닌 그 오브제가 표상하는 어떤 원본이다. 케이스에 들어찬 조잡한 플라스틱 공산물들과 그것이 입고 있는 더 조잡하고 복잡한 미소녀의 IP들을 엄밀히 구분할 수 있는 매니아들이야말로 렌탈케이스의 주 고객층이며, 렌탈케이스 속 상품들의 배치와 가격선정은 일본 서브컬처 산업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역사적·기호적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리 상자의 행렬은 이 세계의 문법과 구성을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기호로 삼은 사람들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유지된다. 이에 반해 취미관의 케이스는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미술-상품을 소비자 앞에 가져다 두었지만, 한정된 정보만으로 이 작품을 선뜻 꺼내오기에 유리벽은 다소 두껍게 느껴진다.

<취미관>을 비롯 그와 함께 열렸거나 이후에 이어지는 다른 판매 행사들에서 역시도 쇼케이스 속 미술-상품과 그 배후에 놓인 맥락들을 어떻게 연결할지의 문제는 고질적인 것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만다라케>에서 선택되는 오브제는 무엇으로서 팔리는가? 하나는 축적된 아카이브 속에서 어떤 특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경우이다. 한정 생산된 초판본 굿즈나 코미케의 첫 카달로그 등 역사적 지평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치를 부여받는다. 또 하나는 오브제의 원본이 가진 가치에 강하게 위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이 <아이돌 마스터>의 굿즈인지, <러브라이브!>의 굿즈인지에 따라 소비층과 향유방식이 달라지는 것으로, 원본이 갖는 브랜드적 가치가 오브제의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그 이후 회차를 거듭해 이어진 두 개의 마켓 행사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퍼폼 2019>에서도 기록적인 참가자수에도 여전히 작품에 대한 정보의 격차는 문제가 되었다. 작가와 작품을 사전에 알고 있지 않은 경우, 전시의 시스템에 맞물리기 힘든 것이다. 이에 2020년의 <퍼폼>은 대대적인 상설 아카이브 구축에 나섰다. 소비 방식의 변화보다도 스스로를 참조점으로 만들 필요성, 감상과 유통의 근거지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한편 2019년까지 각각의 큐브를 하나의 우주로 표현하며 다원우주공간을 표방하였던<pack>의 규모는 2020년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올해의 <pack>은 단독 전시 없이 현대카드 <ART STREET>과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등에 참여하고 패션브랜드 <KUHO>와 콜라보 전시를 기획하였는데, 눈에 띠는 것은 참여 작가의 라인업이 매우 제한적인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는 독자적인 마켓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마켓의 문법 속에서 일종의 작가 셀렉션의 형식을 띠게 된 것이다.

<굿-즈>를 시작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확장해오던 마켓형 전시에서 진정으로 소비되었던 것은 작품이 아니고 경험들일 수 있다. 처음으로 미술을 팔고, 또한 사보는 경험을 극대화하면서 ‘청년 미술 시장’을 구축해왔던 마켓들은 2020년을 맞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이런 변화는 2015년부터 이어져 왔던 어떤 소비 양식의 유효기간이 다한 것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굿-즈>부터 파생된 쇼케이스들은 다양한 방식들을 취하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집착적일 정도로 위계없이 디스플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소비 또한 균질하다고 가정된 취향과 기호의 영역에 맡겨져 있었다. 굿즈 이후 5년, 앞으로의 미술-마켓에서는 다시금 그 작품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작품은 무엇으로서 쇼케이스에 담기게 될 것인가.

 

이 텍스트는 아카이브봄에서 개최된 전시《크림》(2020.7.3. – 7.31.)과 연계되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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