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O: 어떤 첫 방문

서브컬쳐에는 학을 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유년시절은 게임이나 만화책과는 사실상 격리된 채 보냈다. 하지만 세가에서 출시된 ‘어린이 컴퓨터 PICO [1]‘는 “교육용”이라는 명칭이 붙은 덕에 어린 남매의 첫 콘솔게임기이 되었다. 그 후로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훌륭한 오타쿠로 자라났지만 ‘PICO’가 준 첫 게임의 기억은 아련하게 남아 이번엔 동명의 미술 전시(<PICO>, 취미가, 2017.08.28-09.27)에 대한 기대로 제멋대로 옮겨갔다. 전시의 제목과 이 게임기가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VR로 감상하는 작품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려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과 이동이 가능한 형식은 처음이었기에 게이머로서는 기대를 품게 되는 전시일 수밖에 없었다.

전시장은 작은 리셉션 테이블과 세 개의 의자, 그리고 그 앞에 설치된 세 대의 VR기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예약 상황을 확인하면 각 의자로 안내하여 간단한 조작방법을 알려주고 기기를 세팅한다. 헤드기어와 컨트롤러를 장차한 플레이어는 이제 기본적인 가구들이 설치된 현대식 주택 안을 배회한다. 매우 기본적인 수준의 3D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게임은 시점 전환과 이동, 점프, 빛나는 구체를 발사하는 단순한 커맨드만을 이용하여 스테이지를 탐색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1인칭 시점으로 이곳저곳에 설치된 오브제를 구경하고 접촉해보면서 길을 찾아나가며 다음 방으로 이동하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 할 수 있었다. 시작은 집 안이었지만 스테이지를 진행하면 들판으로, 사막으로, 꽃밭으로 이동하는 다양한 광경이 펼쳐졌고, 각 스테이지마다 작가가 채워놓은 텍스쳐와 오브제들이 나름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었다. 첫 스테이지에서 기초적인 폴리곤 덩어리로 보이던 오브제들의 구성과 설계는 스테이지를 넘어갈수록 더 복잡다단해졌다. 플레이어의 눈앞으로 쏠 수 있는 빛나는 구는 어떤 물리적 힘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였지만 일종의 광원으로 작용하며 오브제들의 질감을 다르게 관찰할 수 있게 했다. 단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여정에는 의외로 여러 레이어들이 중첩되어있었다. 그러나 진행하다보니 멀미가 심해져 결국 네 번째 스테이지 중반쯤에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PICO>는 게임과 미술의 접목이라던가 VR과 예술, VR과 신체라는 커다란 주제들과 연관되며 새로운 통찰을 제기한다.ᅠ 작품의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이 있겠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PICO>가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전시장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가 배회하는 스테이지 안에는 곳곳에 회화 작품들이 벽면에 걸려있기도 하고 벽처럼 땅 위에 세워져있기도 하여 이 공간 그 자체가 일종의 갤러리처럼 기능한다. 작가가 직접 ‘그린’ 작품인지는 확실치 않고 게임의 진행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나 이 회화들은 분명히 전시되고 있었다. 이 완벽한 인공의 세계에 갖가지 방식으로 배치된 회화들에 다가가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른다. 회화나 조각을 결국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전시해야한다면, 그리고 그것은 결국 갤러리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VR은 전시에 어떤 가능성을 줄 수 있는가? 조명, 배경이 되는 색채, 질감, 전경, 높이, 크기, 관객과의 거리와 각도, 그 모든 것을 예술가가 직접 조정 가능한 디지털 가상공간은 어쩌면 예술가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전시환경일지도 모른다. 이는 또한 현실 공간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들판 한가운데 솟은 빌딩만큼이나 커다란 그림을 올려다보는 것은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새롭고 압도적인 전시 경험이었다.

하지만 <PICO> 안에서 본 회화들은 헤드기어 내 스크린의 화소의 한계와 화면에서 구현 가능한 화질의 한계 때문에 디테일하게 감상하기가 힘들었다. 현실 세계의 회화를 VR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스캔 혹은 촬영하여 디지털화하는 과정을 거쳐 평면화 되는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질감이나 두께와 같은 질료적, 물질적 조건들이 쉬이 누락된다. 애초부터 디지털 화상이 아닌 이상, 혹은 모든 작품의 물질적 공간성을 구현하는 완벽한 매핑이 가능하게 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문제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물론 언젠가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고 이를 다루는 예술가의 실력이, 혹은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풍부해져서 전시환경을 현실감 있게 구현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된다면 가상공간은 물리적 조건을 극복하고 실제 갤러리의 완벽한 호환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안으로 말해질 수 있을 정도의 기간인지도 확실치 않은 언젠가는 말이다. 하지만 VR의 가능성은 현실의 대체물에서 멈추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꼭 현실에 있는 그대로 작품을 가져와야만 할 필요도, 현실과 같은 방식으로 이를 관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중력과 빛과 물리법칙을 모두 거슬러버리는 것이 가능한 이 곳에는 전혀 새로운 예술의 창작과 배치가, 그리고 이에 대한 새로운 접촉과 경험이 가능할 터이다. 생각해보면 가상 미술관은 전혀 정교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PICO>가 현실 갤러리의 단순한 대체를 추구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PICO> 속의 회화 이미지는 기술적 부족만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작위적인 비실사적 풍경과 설계를 배후로 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호환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날로그 회화의 복제물과 배경이 되는 디지털 공간의 괴리는 너무 강한 한편 <PICO> 내의 작품의 배치는 여전히 전통적인 예술 공간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중력과 시각의 한계가 여전히 작용한다. 가상과 복제 현실의 간극은 애매하게 부유한다. 결국 <PICO>는 자체로 완결된 기획이라기 보단 어떠한 가능성의 프로토 타입을 보고 온 전시라는 감상을 받았다. 아무 의미도 없이 발사되는 빛의 구체나 스테이지 곳곳에 보였던 시범적인 오브제들의 존재는 완전하게 종합된 작품에 접하기보다는 작가의 신기술 실험 현장에 가있는 경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도입 초창기의 어설픔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은 분명 그 경험이 생경함 이상의 고민들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ᅠ 첫 게임기의 기억을 주었던 ‘PICO’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첫 VR 갤러리 경험으로서 아마도 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꼭 처음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 pico는 원래 10의 –12승, 즉 0.000000000001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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