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홍 개인전: Autopilot (2016.9.8-11.12 @ 페리지갤러리)
그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페리지 갤러리의 검은 로비의 짧은 위압감이 무색하게도 눈앞에 펼쳐진 갤러리의 쨍한 바다색의 벽면과 질서를 잃은 원색의 오브제들은 예상치 못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찾아 들어간 잭슨홍의 <Autopilot>은 그 가벼운 질량 안에 나의 ‘미적 태도’를 부유시키고 이내 더 큰 혼돈으로 이끈다. 한눈에 조망 가능할 정도로 넓지 않은 공간은 어떤 칸막이나 좌대도 없이 열려있다. 벽면과 바닥 곳곳에 설치된 각각의 오브제는 원래의 위치도, 크기도, 색깔도, 용도도 잃은 채 갤러리 곳곳에 배치되지만, 오브제 간에 어떤 연관 관계를 읽어내기란 매우 힘들다. 각각의 오브제들은 어떤 기계나 건조물의 부품으로 짐작되는 외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혹은 실제로 사용 가능한 부품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배치를 읽어내려는 시도도 각 오브제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시도도 무산되고 다만 무엇 하나 연상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배회할 뿐이다. 벽에 붙어 벤치의 기능을 가져야 할 것 같은 흰 지지대 부품은 지지할 것을 잃었고 날개가 하나뿐인 프로펠러는 다 돌지 못한다. 규칙적이지 못하게 구겨진 철판에까지 눈이 닿으면 이것이 어떤 완성품의 부품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오히려 의심스러워진다. 두 눈의 아래를 잃은 오렌지색의 사람만이 벽면의 중심부에서 이 불완전한 세계만이 자신의 영역인 양 이 사물들을, 그리고 이 공간에 침입한 우리를 조망한다.
오브제로 선택된 조형은 원래의 자리를 잃고 화이트큐브에 놓임으로써 기존에 주시 되지 못했던 자신의 조형적 미를 개시하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최대한 그 본기능을 유추하기 힘든 조형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예술의 반대항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산품들이 화이트 큐브 안에 놓여 미적으로 주시 되는 것은 이제 와서는 사실상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조형들은 물성 그 자체로 남겨지기보다는 확대되고 채색되며 그 질량이 왜곡되어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바다색 배경에 놓인 이것의 매끈한 표면과 선명한 색감은 ‘예술’보다는 ‘디자인 서울’ 등지에서 보여주는 공공디자인의 배치의 전형을 연상시킨다. 공공디자인이 추구하는 세련된 감수성은 산업 사회의 권태를 극복하고 생활 세계에 나름의 미적인 것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터, 그러나 이것도 어느새인가 이미 전형화되어 쉬운 생색내기와 구색 맞추기용 행정의 어떤 결과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미술 공간에 전시된 디자인의 클리셰는 예술성보다는 그 키치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술을 따라하는 어떤 키치를 다시 따라 하는 예술 오브제들은 이것을 해석하려는 몸짓조차 키치로 만든다. 오브제들 사이를 거니는 관객의 모습은 화이트큐브를 순회하는 미술애호가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예쁜 공공디자인 장식물을 만나서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에 가까운 것이 된다. 동심을 자극하는 벽면의 색감과 붉은 철골의 정글짐, 청녹색 미끄럼틀, 핑크빛 시소 등 놀이터의 유비를 피하기 힘든 외관의 오브제들에 직관적으로 동하는 마음을 완전히 외면할 수 있을까. <Autopilot>은 단단하게 무장한 해석의 태도를 동요시키고 우습게 만든다.
<Autopilot>은 전시의 이름이자 작품의 이름이다. 하나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바다색의 벽면을 포함한 공간 전체가 관객을 삼킨 채 하나의 작품이 된다. 밝은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본래 물성을 숨기며 필사적으로 자신의 원래 무게를 위장하는 (가증스러운 ‘살색’의 샤프트를 보라) 오브제들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예술 공간으로 침입하여 최대한 무용한 형세를 취하며 방문자들을 교란한다. 잭슨홍의 전시와 작품을 말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디자이너라는 출신은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그를 ‘순수 미술’과는 별개의 영역, 혹은 경계의 영역에 위치시킨다. 이 전시에서도 역시 이 표현을 꺼내야만 하겠다.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의 이름인 ‘오토 파일럿’은 자동 조종 장치, 즉 사람이 아닌 기계장치가 자동으로 목적지를 향해 탈것을 운행하는 기동 방식이다. 이 에서는 디자이너가 향하는 자동적인 관습과 예술가가 향하는 자동적인 관습의 항로가 중첩되며 부딪친다. 디자인적 색감의 전형을 반영한 산업 디자인의 오브제들은 명백한 예술 전시장의 공간 구성 문법에 의해 배치되어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디자인과 예술 양자를 풍자한다. 다만 이 전시는 이 틈새를 자신 있게 벌려내기보다는 끝까지 정체성을 모호하게 숨기고 그 모든 의미가 부여될 가능성으로부터 최대한 도망가려는 듯하다. 기능을 잃은 채 산포된 기계부품들은 스스로 목적지를 설정하지 못하고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예술이 되고팠던 것 사이에서 다만 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