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미x루크] ‘동화 속 마법의 세계’를 건너가는 끊임없는 달리기

밝은 터콰이즈에 핑크빛 잉크가 번져 섞인 배경 위로 거품과 레이스, 별들이 떠다니고, 거리의 풍경은 온통 파스텔 톤으로 아련하다. 셀화 애니메이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하 《세일러문》)의 화면은 지독하도록 ‘예쁘다.’ 배경을 정식으로 그리는 대신 만화 연출을 차용한 것은 제작비용을 아끼기 위함이라지만 지금 와서 본다면 그토록 어여쁜 세계가 있을까.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조차 러프한 펜화에 아련한 색채가 번지듯 채색되어 소녀의 … 더 보기 “[이미미x루크] ‘동화 속 마법의 세계’를 건너가는 끊임없는 달리기”

[YPC x CREAM] 쇼케이스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2015년 가을, 세종문화회관의 떠들썩한 공기는 SETEC이나 AT센터(두 곳 모두 <서울 코믹월드>의 개최지이다)의 경험을 쉽게 떠올리게 했다. <굿-즈>의 기획은 <E3>이나 <원더 페스티벌>과 같은 서브컬쳐 판매전으로부터 모델을 취했기 때문에 서브컬처 판매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코믹월드는 그저 매매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만은 아니다. 동인 플랫폼의 발달로 웹발행이나 위탁통판도 어렵지 않아진 상황에도 굳이 먼 길을 … 더 보기 “[YPC x CREAM] 쇼케이스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맛집’을 찾아서 — 여성 오타쿠의 장르 이동을 통해 본 욕망의 동학

“하세베 군과는 잘 맞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그는 예전 주인을 싫어하니까 얘기가 안 되려나.” 게임 〈도검난무〉[1] 2차 창작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커플 중 하나, 소위 ‘쇼쿠헤시’[2]의 접점은 단 한 줄의 대사였다. 저 대사 한 줄만으로 둘을 주인공으로 한 동인지가 한 행사에 수백 권씩 쏟아졌다. 일본의 저명한 명도(名刀)들을 미남으로 의인화시킨 캐릭터들을 수집하는 소위 ‘컬렉션 게임’의 … 더 보기 “‘맛집’을 찾아서 — 여성 오타쿠의 장르 이동을 통해 본 욕망의 동학”

〈Two Tables〉: 채석장과 컨베이어벨트

이상훈 개인전 <Two Tables> (313 art project, 2017.10.12.-11.4.) 한적한 성북동의 가옥집을 개조한 전시장에는 서사성의 편린조차 배제된 기계적인 회화들이 강한 존재감을 내세운다. “그리기의 체계를 연구하는 작가”라는 표현에 들어맞게도 이상훈의 그림들은 회화에 조합된 질료들의 물질성도, 회화적 구성이 보여주는 환영도 최대한 배제시키고 점, 선, 면, 색과 같은 이차원 조형을 구성하는 원개념들의 조합을 보인다. 그의 ‘채석장’에서 이루어지는 채굴은 한 … 더 보기 “〈Two Tables〉: 채석장과 컨베이어벨트”

PICO: 어떤 첫 방문

서브컬쳐에는 학을 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유년시절은 게임이나 만화책과는 사실상 격리된 채 보냈다. 하지만 세가에서 출시된 ‘어린이 컴퓨터 PICO [1]‘는 “교육용”이라는 명칭이 붙은 덕에 어린 남매의 첫 콘솔게임기이 되었다. 그 후로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훌륭한 오타쿠로 자라났지만 ‘PICO’가 준 첫 게임의 기억은 아련하게 남아 이번엔 동명의 미술 전시(<PICO>, 취미가, 2017.08.28-09.27)에 대한 기대로 제멋대로 옮겨갔다. 전시의 … 더 보기 “PICO: 어떤 첫 방문”

덕후를 직시하기: 〈덕후 프로젝트〉가 보고자 한 것

북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진행한 <덕후 프로젝트 : 몰입하다>는 11명의 작가들이 저마다 덕후를 주제로 수집물이나 취미 활동을 미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일상과 서브컬쳐와 미술계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과 형식을 보여주는 한편 새로운 사회 문화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고 쉽게 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의 문화계 전반에서 덕후라는 집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 더 보기 “덕후를 직시하기: 〈덕후 프로젝트〉가 보고자 한 것”

서브컬쳐 페인팅 프로그램 연대기: 오에카키에서 클립스튜디오까지

90년대 말부터, 특히 2000년대 초 이후 한국의 디지털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윈도우가 널리 보급되어 텍스트 메뉴 대신 이미지 아이콘이 통용되고, 키보드 대신 디지털 2차원 평면에 마우스를 움직여 사용하는 것이 조작의 기본이 되었다. ADSL의 보급과 함께 인터넷 의사소통에 본격적으로 이미지가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디지털 카메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짤방, 이모지, 아바타 등의 각종 이미지 개념이 소통에 적극적으로 … 더 보기 “서브컬쳐 페인팅 프로그램 연대기: 오에카키에서 클립스튜디오까지”

〈뉴타운 고스트〉 : 영등포, 종로, 그리고 베를린

<뉴타운 고스트> (2005) 브라운관 너머로 검은 셔츠에 검은 매니큐어, 거의 밀어버리다시피 한 짧은 머리, 반항적인 인상의 여성래퍼가 드럼비트에 맞춰 랩을 쏘아댄다. 트럭 뒷칸에 꼿꼿이 서서 메가폰 마이크를 입술에 바짝 붙이고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외치는 모습은 랩이라기보단 아지테이션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하다. 래퍼와 드러머가 탄 트럭은 영등포 거리를 무심히 내달리고 스카이스크래퍼와 영등포 시장의 전경이 그 뒤로 교차한다. … 더 보기 “〈뉴타운 고스트〉 : 영등포, 종로, 그리고 베를린”

어떤 조종사의 부유

잭슨홍 개인전: Autopilot (2016.9.8-11.12 @ 페리지갤러리) 그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페리지 갤러리의 검은 로비의 짧은 위압감이 무색하게도 눈앞에 펼쳐진 갤러리의 쨍한 바다색의 벽면과 질서를 잃은 원색의 오브제들은 예상치 못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찾아 들어간 잭슨홍의 <Autopilot>은 그 가벼운 질량 안에 나의 ‘미적 태도’를 부유시키고 이내 더 큰 혼돈으로 이끈다. 한눈에 조망 가능할 정도로 … 더 보기 “어떤 조종사의 부유”

waifu2x와 서브컬쳐 이미지의 동학: 더 고화질의 아내를 위하여

디지털 공간 속 이미지는 오직 복사본으로만 존재하며 무한히 자가복제 가능하다. 손실되지 않는 완벽한 화상의 공유와 보존이 가능해진 작금의 기술적 상황은 마치 이미지의 꿈이 실현된 것만 같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게 원본을 내어주지 않는다. 유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화상은 공유의 과정에서 그 물질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기보다는, 그 공유처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의해 축소되거나 압축되어 저화질의 이미지로 … 더 보기 “waifu2x와 서브컬쳐 이미지의 동학: 더 고화질의 아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