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산 타이핑 클럽

결성 시기: 2017년 가을
구성원: 곽현지, 김이현, 송이랑, 이기원, 이상엽, 장예지, 조은채, 콘노 유키
활동 지역: 서울
웹사이트: t-504.tistory.com
소셜미디어:  https://twitter.com/WWS_Typing_Club

서로에게 마감과 피드백을 종용하며 동시대 미술의 여기저기를 살펴봅니다. 각자의 글을 서로 다듬고 짚어보며 차츰 더 나은 글을 생산하려 합니다.

인터뷰 일시: 2022년 7월 27일 오후 9시 

와우산 타이핑 클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대학원생 동기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원생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옐로우 펜 클럽의 출발과 유사하다. 콜렉티브의 결성 계기와 관련해서 당시 학내 분위기나 커리큘럼, 구성원의 문제 의식이 궁금하다. 

기원 밖에서 활동을 하다가 대학원에 들어왔는데 예상한 것보다 학교 안과 밖의 격차가 더 크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를 보거나 글을 쓰는 경험을 공유하기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몇몇 분들과 얘기를 해보니 관심 있는 분들이 있어서 다같이 모여서 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매거진에서 에디터로서도 일을 하니까 글을 쓰는 사람을 찾는 일도 하는데, 항상 필자가 부족하니까 장기적으로는 그런 필자를 찾는다는 기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과 밴드에 모집글을 올렸더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상엽 예술학과가 인원이 많았는데 그 안에서 아는 분들이 없어서 관련해서 얘기를 나눌 만한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원 님이 모집글을 올려 주셨을 때 동시대 전시 얘기나 글 쓰는데도 관심이 많아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키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중학교부터는 한국에서 다녀서 자연스럽게 대학원도 한국으로 진학했는데 학부 때보다 더 알차게 지내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일본어- 한국어 번역 일을 하게 되면서 한국 혹은 일본 미술씬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은 적이 있고, 그때마다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호기심 차원에서 좀 더 한국 일본 미술씬을 좀 더 알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웹사이트에 전시 리뷰글을 업로드하는 활동을 하셨는데 보이지 않는 선에서 서로 전시를 같이 보았다거나 공부를 같이 하거나 하는 준비 활동이 있었는지? 

기원 내가 제안을 한 모임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주도를 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 옐로우 펜 클럽이란 곳을 보니까 한두달에 한번 정도 글을 올리더라, 우리도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냐라고 생각했다. 멤버를 반으로 나눠서 업로드에 시간차를 두려고 해다. 사실 일종의 착시인데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각 개인은 두 달에 한번 또는 한달에 한번 쓰는데 업로드는 한달에 한번, 2주에 한번 쓰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의도했다. 전시는 처음에는 엄청 자주 같이 다녔던 것 같진 않다. 왜냐면 당시엔 서로 그렇게 많이 친해지진 않아서 어색했던 부분이 크다.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초반에는 각자 보고 한둘 정도씩만 다니다가 나중에 좀 친해지고 나서는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맛집 여기 가고 싶으니 주변 전시 갑시다’ 이런 식으로 모여서 가는 것으로 발전했다.

글감을 고르고 글을 쓰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기원 이 모임이 생산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마감일자와 서로가 서로에게 마감을 독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원고 나오면 중간에 한번 서로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초창기에는 그렇게 많이 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서로 피드백을 강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다 매거진으로 치면 기획기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특집이나 결산 같은 포맷을 시도하는 쪽으로도 이어지게 됐고, 전시 결산이나 <더 스크랩> 특집, 도쿄 특집과 같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의 기본 단위는 리뷰를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 웹 활동의 반응은 어땠나?

상엽 트위터에 홍보한다는 게 그렇게 위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그때 기원 님이 이미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홍보가 된 것도 있고 SNS를 잘 활용하셨던 것 같다. 가시적으로 관심이 보이고 사람들이 이 모임을 궁금해한다라는 것이 느껴졌다.

유키 글쓰기 전까지는 반응을 받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피드백이 직접적으로 온다는 것이 생소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혼자서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기원 님이 잘 리드를 해주시고, 긴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요약해서 올린다는 것도 방법론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기원 그때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그럴싸한 프로필 사진을 하고 무언가를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관심을 가져주는 거의 마지막 시기였던 것 같다. 신생공간들이 해왔던 것처럼 SNS 어카운트 만들어서 올리면 사람들이 뭘 하든 보러가줬으니까. 그래서 애초에 내부적인 피드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사람들에게서 크게 유익한 피드백이 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요 이상의 피드백이 오기가 힘들 것이니 우리끼리 더 심도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멤버들한테도 얘기했다. 그런데 시작해보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조회수가 신기하긴 했는데 조회수에 연연해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막 댓글이 달리고 논쟁이 벌어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까. 전시 결산이랑 도쿄 특집이 가장 많은 반응을 모았는데, 논쟁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보였고,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하면서 차츰 섭외나 청탁이 조금씩 들어오는 걸 보니까 ‘올리면 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활동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우리는 규칙적으로 글쓰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땠는지 궁금하다. 

기원 앞서 말한대로 서로 엄청 친해서 모인 게 아니다 보니 코로나 거치면서 모이기가 더 힘들었고, 활력을 잃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상엽 같은 대학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하다 보니 시간이나 일정이 비슷한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그 후에 밥 먹거나 전시를 보러 가기도 시간을 맞추기가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나온 뒤에는 그러기가 좀 힘들어져서 자연스럽게 글 얘기나 전시나 실제로 만나서 뭔가를 꾸리는 원동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유키 나는 비자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상엽 님 말씀대로 대학원에 있을 때는 수업시간대 사이에서 시간 맞추거나 서로 정보나 수업도 공유하고 서로 글 쓰는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점점 논문을 준비하는 분이나 취직을 하시는 분도 계셔서 만날 시간이나 장소를 갖기가 힘들어졌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좀 만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기원 물리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없으니까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었고, 비교적 빨리 논문을 쓰신 분들이 계셨고 수료하고 일을 하게 되신 분들도 계시면서 진행하기 어려웠던 점들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것 자체에 투자할 수 있는 퍼센테이지가 높은 분들이 있는 반면 적은 분들도 있으니까.

상엽 아무래도 원고를 쓰면 고료가 나오는 일이 아니다보니, 우선 고료가 나오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제약이 큰 게 컸던 것 같고, 다같이 모이는 에너지나 기쁨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유키 나는 ‘전시를 이만큼 보면 다른 사람도 이만큼 봤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같이 글을 쓰면 되겠지 했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걸 또 밀어붙이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외부 활동이나 기금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답변했는데. 글을 쓰고 웹상에 올리는 활동에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확장해서 활동할 생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기원 기금을 안 쓴 건 아니고 못 받은 거다(웃음) 굵직한 것을 몇 번 썼던 것 같은데 모두 탈락했다. 대신 서교예술실험센터나 청년허브에서 소소하게 받은 것들이 있었는데 나름 알차게 썼다.

상엽 큰 기금은 거창한 것도 썼었고, 비평의 비평 같은 주제나 전시 리뷰의 연장선에서 쓴 것도 있었고, 글을 아카이브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겠다 이런 주제도 냈었는데 다 반려가 되면서 의욕이 많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돼서 타격이 컸다.

구성원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연락은 하는 편인가?

기원 요즘은 잘 안 했다. 올해는 그래도 유키의 결혼 소식이나 몇 가지 있어서 연락을 했었고 4인 모임 제한 풀리고 동창회 비슷하게 한번 만났었다. 미술 관련된 일을 하시다 일이 힘들어 그만두신 분들도 있다.

상엽 나는 경제활동은 미술 밖의 행정일로 하고 있다. 그 돈을 미술에 쓴다. 이 지속이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원하는 방향성은 미술만으로도 벌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와우산 타이핑 클럽의 활동이 지금 미술 현장에서 하는 일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영향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상엽 원고 청탁이나 그런 부분의 경우 와우산의 활동을 보고 연락을 주신 분들이 조금 있는 것 같긴 하다. 글을 계속 써야지 이어서 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니까 와우산 활동 당시 썼던 것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고, 그게 굉장히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유키 와우산에서 글을 봤다고 연락이 왔던 했던 경우도 있다. 업로드를 하고, 마감을 하고, 완성된 글을 몇번씩 다시 읽어보는 경험이 흥미로웠고 유익했다. 그때의 글을 보며 그때 했던 생각이나 이론적인 내용이나 관심사의 변화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다.

기원 이 판을 깔고 제안을 한 사람이면서도, 멤버 중 나이가 가장 많고 남성이고, 경력도 상대적으로 조금 있으니까 가능하면 의견을 안 내고 뒤로 빠지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멤버분들께 성과가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내가 어떤 학문적 성취를 이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그와 별개로 와우산 타이핑 클럽을 함께 했던 것은 제가 대학원에서 한 것 중 가장 뜻깊은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콜렉티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 다시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나 가능성이 있는지? 

상엽 와우산이 총 여덟명인데 이제 탈미술 하신 분도 계시고 옛날 같이 다시 모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일부만 모였을 때 그것이 와우산 타이핑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현재로선 잘 그려지는 것이 없다.

유키 우선 비자가 나와야 한국에 갈 수 있다. 그런데 와우산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그런 열정 같은 것은 계속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잡지에 글을 쓸 때 내 마음 같지 않은 글을 쓴다는 느낌을 종종 받기도 하는데, 돈을 받은 것 치고는 글을 잘 썼다 이런 감각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뭔가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거슬러 올라가면 와우산 타이핑 클럽 때의 경험이 자꾸 돌아오는 것 같다.

기원 ‘예전에 좋았던 시절로 되돌려야 한다!’ 같은 맥락이라면 힘들 것 같고, 이 안에서 의지와 여건이 허락하는 멤버들끼리 새로운 뭔가를 시도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에 했던 걸 그대로 이어가는 방식 역시 한계가 있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 놓아서 전시를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 것도 있고, 나를 비롯해 각자의 개인적인 문제도 있다. 한편으론 씬 자체에도 활기가 좀 없다는 느낌을 다같이 받고 있다.

콜렉티브로서 여럿이기에 할 수 있엇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기원 평소 머릿속으로만 해보고 싶었던 기획기사 아이템들이 있었다. 가령 전시 결산 같은 것인데, 예전엔 <아트인컬처>에서 꽤 상세하고 스케일 크게 했었는데 그런 걸 시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혼자서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니까 실행할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와우산 멤버들과는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다들 흥미로워해서 실행해볼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 대가가 없는, 바꿔 말하면 아무런 제한이 없는 리뷰를 쓰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라 우리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시도들이 특히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상엽 와우산에 올라오는 글들이 많으니까 어떤 글을 쓰는지, 어떤 전시에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피드백에서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보는 데서 느끼는 기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원고료를 주지 않는 글을 내가 혼자 애정을 가지고 너무나 열심히 썼구나 싶다. 정말 ‘진심’이었다. 별로 달라진 것이 크지 않은데 왜 이렇게 달라진 것 같은지 모르겠다.


유키 사실 콜렉티브의 동력이라는 것이 잘 와 닿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격이라 혼자 하고 싶은 걸 쓰고 내보내고 업로드하고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실행으로 옮겼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글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를 옆에서 보는 감각은 매우 흥미로웠다. 글만 봤을 때는 평범해도 쓰고 있는 사람이 좋아하는 표정으로 어떤 전시를 좋게 봤다고 말하는 걸 보는 것이 모임에서 좋았던 점이다. 열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