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시기: 2015년
구성원: 가브리엘 드 라 푸엔테(Gabrielle de la Puente), 자리나 무하메드(Zarina Muhammad)
활동 지역: 런던, 리버풀, 온라인
웹사이트: https://thewhitepube.co.uk/
소셜미디어: https://twitter.com/thewhitepube; https://www.instagram.com/thewhitepube/; https://www.youtube.com/channel/UC3dcNljL17OyeC_BcG0WtBQ/featured
더 화이트 퓨브는 가브리엘 드 라 푸엔테와 자리나 무하메드가 2015년 구성한 콜렉티브로, 미술, 비디오 게임, 책, 음식, 일상, 날씨, 그리고 뭐든 내키는 것에 대해 글을 쓴다. 매주 일요일 새로운 텍스트를 웹사이트에 업로드하며, 그 글을 읽으며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한다. 이외에도 통과된 기금 서류를 모아 공개하는 “Successful Funding Application Library,” 매달 노동자 계층 비평가나 창작자에게 기금을 수여하는 “Working Class Creative Grant”를 진행한다.
인터뷰 일시: 2022년 10월 24일 오후 8시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더 화이트 퓨브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콜렉티브의 유머러스한 이름이 탄생하게 된 맥락이 궁금하다.
가브리엘 드 라 푸엔테(이하 ‘겝’): 우리는 런던에 있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미술 대학에서 만난 동기다. 둘다 2D를 전공했기 때문에 스튜디오를 공유하기도 했고,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졸업하던 해에 새삼 전시를 보러 가지도 않고 전시에 대한 리뷰도 보지 않게 된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자리나에게 재미있을 것 같은 전시를 추천해줬다.
자리나 모하메드: 우리 둘 작업 사이의 접점에 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보고 돌아오던 중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라는 무료 일간지에서 그 전시의 리뷰를 발견했다. 전시를 간략하게 묘사하고 별 세 개쯤 준 성의 없는 글이어서 어이가 없었다. 그날 겝과 그 리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차라리 우리가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우리가 공감할 만한 비평이 없었으니까. 우리의 이름은 맥락도 없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겝: 옐로우 펜 클럽과 우리의 이름에 모두 색깔이 들어간다는 점이 좋다. 둘 다 2015년에 시작됐고, 우린 완전 똑같은 사람들 같다! 화이트 큐브는 전시의 형식이기도 하고, 전세계에 지점이 있는 상업 갤러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화이트 퓨브’라는 이름은 웃기기도 하고, 백인중심주의, 전문가중심주의, 권력 있는 기성 세대를 모두 부정한다. 어쩌면 우리의 성공에 70%쯤 기여한 것이 바로 이 이름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 미술 현장의 반응은 어땠나? 그 이후에 더 화이트 퓨브에 대한 인식에 바뀐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자리나: 2015년 웹사이트를 만든 다음 각자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홍보했다. 영국의 여성과 논바이너리 작가들이 모여 있는 페이스북 그룹에도 시작을 알렸는데, 이제까지 기다려왔던 것이 드디어 생겼다는 반응이었다. 첫날부터 우리에 대한 트윗이 많이 올라왔다. 런던 미술 현장에 있던 빈칸을 우리가 채웠던 것이다. 2년쯤 지나서부터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진지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겝: 처음에는 전시에 대한 글을 썼지만 이후에는 근무 조건, 아티스트피, 현장의 권력 남용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사람이 없다 보니 우리가 꽤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
자리나: 우리에 대한 반응이나 인식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우리가 차지하던 공간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영국에서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와 비슷한 탄생 설화를 가진 콜렉티브가 있다니 신선하다.
겝: 전문 필진들은 주로 프리랜서로 일하며 여러 잡지나 출판물에 기고하고, 강의를 나간다. 우리와 비슷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우리는 매주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을 깰 수 없는 법칙처럼 여긴다는 점에서 달랐다.
서로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협력하는지 궁금하다. 친구로서의 대화와 업무상 대화가 잘 나뉘어지는 편인가, 아니면 모두 섞여 있나?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갈등이 있었던 적은 있었는지?
겝: 일과 일상이 아예 붙어있다. 업무와 사생활을 분리하려고 다른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경계가 무너졌다. 나는 리버풀에 있고 자리나는 런던에 있는데, 기차표가 비싸 자주 보지 못한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통화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에 대해 논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니까 사적인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대화를 통해 미술, 비디오 게임, 책 등 관심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고 거기서 글감을 찾기도 한다. 작년에 멘토에게 글쓰기에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글쓰기를 굳이 미술 전시 리뷰로 한정할 필요가 있냐는 피드백을 들었다. 관점이 전환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쓰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자리나와 대화하는 것이 무척 생산적이다.
각자 생업으로 하는 일이 있나, 아니면 더 화이트 퓨브 활동을 전업으로 하고 있나? 더 화이트 퓨브 활동이 직업이나 생계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는지?
겝: 우리 둘 다 더 화이트 퓨브 활동을 전업으로 삼고 있다. 큐레이터로 근무한 적이 있지만 사정이 있어 그만두고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자리나는 마케팅에 종사하다 지난 달에 그만두고 전업이 되었다. 패트리온(Patreon)을 통해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있고, 간헐적으로 강의, 토크, 인터뷰, 자문 등 일을 한다. 굿즈를 팔기도 하고. 우리는 장부를 아예 공개한다. 웹사이트에 보면 우리가 얼마나 버는지 볼 수 있다.
자리나: 수입은 물론 지출까지 공개한다. 내가 훌라후프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공개되는 것이 민망하긴 하지만… 실제로 얼마를 버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면 일을 받는 입장에서 협상에 유리하기도 하다.
국공립 혹은 사립 기관과 협력한 적이 있었는지? 기관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나 커미션 작업은 어땠는지?
자리나: 토크를 진행하거나 패널로 참여하곤 한다. 일주일 정도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긴 호흡으로 협업한 적은 없었다. 영국의 미술 기관이 일하는 방식은 엄격하고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관과 장기간 협업하기 보다 단기적인 일을 하고, 돈을 받아 튀는 편을 선호한다. 의뢰를 받아 보고서를 제출한 경우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신선한 관점이 있는 비평가니까 뾰족한 질문을 해달라고 하지만 막상 그런 질문을 던지면 곤란해 하곤 했다. 하라고 한 일을 제대로 해버리면 갈등이 생기고 만다.
더 화이트 퓨브는 미술 전시 리뷰를 올리는 블로그 같은 웹사이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다루는 주제도 광범위해졌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확장에 특별한 방향성이 있었는지? 장기적인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겝: 가장 먼저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는 레지던시였다. 참여 작가가 웹사이트를 점령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장부를 공개했는데, 이때 사람들이 반응이 뜨거웠다. 2020년에는 더 화이트 퓨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하면서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Successful Funding Application Library”가 추가됐다.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통과된 기금 서류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쯤에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한 미술 현장 관계자가 후원을 할 테니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연락을 해왔다. 언제나 창작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상금으로 쓰기로 했다.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노동자 계층 비평가에게 주는 상을 만들게 되었다. 그해에 팟캐스트도 시작했는데, 언제나 팟캐스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유튜브 채널도 되살리려고 한다. 모든 것이 어려운 일이라기보다 원래부터 하고 있거나 좋아했기 때문에 당연히 시작할 일로 느껴졌다.
가깝거나 먼 미래의 꿈과 희망과 야망이 있다면 무엇인가?
겝: 아직 공개하지는 못하지만 계획된 것들이 있다. 때가 되면 공개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전시 리뷰를 쓰는 게 정말 좋다. 매주 리뷰를 써서 올려야 한다는 원칙에는 앞으로도 예외가 없을 거다. 돈을 조금 주는 작은 일 여러 가지를 하는 것보다는 한번에 큰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우리의 일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 테니. 내년 존 모스 회화상(John Moores Painting Prize)의 심사위원이 되었는데 무척 신이 났다. 내친김에 터너상(Turner Prize)의 심사위원이 되는 건 어떨까? 중요한 상의 수상자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고 싶다.
자리나: 대체로 이런 큰 상의 심사위원에 동의하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거다.
겝: 우리가 하는 많은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인스타그램이 작가의 포트폴리오처럼 작동하는 것을 보고 문제 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너무 경쟁적이고, 알고리즘이나 검열의 문제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미술가를 위한 더 민주적인 플랫폼을 만드려고 한다. 단순하고 광고 없는 플랫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수 미술상의 심사위원위 되고, 대안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큰 책임일 텐데. 활동을 시작할 때는 기성 세대에 반발하는 일종의 언더독이라는 점이 활동에 중요한 모멘텀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갈수록 미술 현장에서 책임이 더해지고 위치가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리나: 2019년쯤부터 위치의 전환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독자층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힘을 갖게 된 것 같다. 준비도 채 하기 전에 대안적이고 작은 그룹에서 힘이 있는 그룹이 된 것이다. 갈수록 성장통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겝: 너무 오랫동안 권력 자체를 거부하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며 부정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 글을 읽고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는 영향력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영향력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는데,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비디오 게임 리뷰나 쓰는 두 사람이 만든 “더 화이트 퓨브”라는 그룹이 영향력을 갖게 됐다니! 힘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웃긴 상황이 되는 거다. 특히 우리가 심사하게 된 존 모스 회화상은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미술관이 주관하는데, 그런 곳이 “더 화이트 퓨브”라는 사람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고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흥미진진하다. 미술은 그저 진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굳이 그래야만 할까?
자리나: 심사위원(jury)이라는 단어는 법적인 개념으로는 배심원을 뜻한다. 시민들이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심사위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단지 관련 지식을 좀더 가지고 있다고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오히려 말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