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시기: 2021년
구성원: 쥬세페 도론조(Giuseppe Doronzo), 로만 에르몰레브(Roman Ermolaev), 미켈라 트로바토 지안카디요(Michela Trovato Giancardillo), 안드레아 네코픽(Andrea Knezovic)
활동 지역: 암스테르담
웹사이트: https://marc.amsterdam/
소셜미디어: https://www.instagram.com/stichtingmarc.amsterdam/
마크는 학제적 아티스틱 리서치 콜렉티브이자 플랫폼으로, 작가, 연구자, 협력 기관 등의 혼종적 협력 및 실천을 도모한다. 씽크탱크 역할을 하는 워크숍과 심포지움,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마크는 시의적인 사회적 쟁점, 교차성, 제도적 지형을 다루고자 한다.
인터뷰 일시: 2022년 10월 19일 오후 8시
마크는 음악가, 미술 작가, 큐레이터 등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되는데, 마크가 지향하는 학제적 접근을 반영하는 것 같다. 결성의 계기와 콜렉티브로서 의사 결정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주세페: 코로나 기간에 우리가 어떤 문화적 환경에 처해있는지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다문화적이고 국제적인 환경인데다가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음악가다. 그래서 이미 형성된 네트워크를 탐구하고, 거기서 잠재력을 보기 시작했다. 같이 작업하던 로만에게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학제적 콜렉티브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는데 긍정적으로 답변 주었고, 관심이 있을만한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켈라: 리서치를 하던 중 안드레아가 합류했다. 서로 다른 도시 출신이지만 다들 네덜란드로 이주해서 산 지 꽤 되었기 때문에 환경과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중에 전공 분야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안드레아: 창작자이자 연구자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이브리드 실천을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에 합류했다. 네트워킹을 하고, 전시와 프로그램, 오픈콜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씽크 탱크 혹은 허브가 되어 다양한 가치가 경합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특정한 담론적 틀에 갇혀 있거나 기관에서 일을 하면 혼자서만 일을 하게 되니까 정해진 길을 따르게 된다. 그래서 틀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하이브리드 플랫폼에 속해 다양한 논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업실 겸 전시장으로 쓰는 공간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 공간을 쓰게 됐나? 구성원이 모두 암스테르담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이 공간을 쓰고 있는지?
미켈라: 작년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는 공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따로 공간이 없어서 서로의 집에서 만나기도 하고, 로만이 일하는 곳에 가기도 한다. 암스테르담은 공간이 부족하고 월세도 비싸서 지속적으로 사용할 공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 기관과 협력을 모색하기도 한다. 다음에 다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한다.
주세페: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 기반 대학이나 기관과 연계하면서 네트워크를 확장하려고 한다. 우리가 기관의 프로그램에 연사로 초청받는 경우도 있다. Musiekgebouw, WOW Amsterdam와 같은 기관과 협력한 적이 있다.
미켈라: 암스테르담 대학, 암스테르담 아카데미, 로테르담의 뉴인스티튜트 등 여러 학교에서 강연을 하거나 토크를 했다. 이런 협업을 통해 네트워크와 관객을 확장하고 있다.
독립적인 콜렉티브 활동과 제도 공간과의 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아카데미와 연계할 수 있다는 점도 신선하다. 국공립 혹은 사립 기관과 독립 공간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편일까?
미켈라: 이곳에도 물론 제도적 분리주의(institutional divisionism)가 있다. 우리 같은 콜렉티브는 대안적인 움직임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암스테르담의 [문화예술이] 상업화되면서 대안적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작은 단체들끼리 연대해야 한다는 시급성이 있다. 제도권 공간과 협업은 대체로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각자가 문화예술계 종사자이기 때문에 업무상 맺은 관계를 통해 기관 소속 관계자를 우리 프로그램에 초청하거나, 우리가 기관에 초청되기도 한다. 기관에 소속된 사람을 초청하면 그 기관이 초청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만남이 훨씬 더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행정적 절차를 밟았다면 무척 복잡했을텐데,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기 때문에 각자의 관심시를 더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안드레아: 기관과의 관계는 예술 실천과 리서치를 연결하고, 서로 다른 방법론이 교차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마크의 방향성과도 관계가 있다. ‘아티스틱 리서치’라는 교수법 혹은 연구방법론이 대두되면서 여러 기관들이 우리의 실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미켈라: 물론 제도권 교육 기관이 이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크를 시작한 이유도 제도권의 프로그램이 표방하는 바와 달리 실제로 학제적 연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안드레아는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아티스틱 리서치와 미술 이론을 전공했는데, 프로그램의 취지는 창작자, 연구자, 기획자가 모두 어울려 실천적으로 작업하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지려면 스스로 조직을 해야만 한다.
마크는 연간 프로젝트마다 새로 주제를 정하고, 오픈콜을 진행하거나 전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왔는데, 각 단계별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 많을 것 같다. 콜렉티브로서 의사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미켈라: 우리 사이에 위계가 없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모든 과정을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일하려고 한다. 그러니 대화를 많이 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선,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모두가 관심을 갖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주제를 찾으려 한다. 이번에 함께 작업할 키워드는 불활실성(uncertainty)이다. 물론, 모두에게 이 단어가 뜻하는 바가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꽤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활동에 필요한 자원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한국에서는 주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마크의 환경은 어떤지 궁금하다.
미켈라: 네덜란드의 지원 사업을 통해 기금을 받기도 한다. 충족해야 할 조건과 의무가 따라온다. 특히 도시에 일정 정도 기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크가 추구하는 학제적, 다원적 프로젝트는 여러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기가 분리한 경우가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받거나 Musiekgebouw의 초청으로 “String Quartet Biennale”에 참여해서 사례비를 받기도 했다. 곧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는 행사를 진행하려 하는데 입장료를 받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주세페: 해외 파트너와 협업하는 프로젝트에 주는 기금도 있는데, 이걸 잘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네덜란드 문화부 산하 “Dutch Culture”에서 매년 국가를 정해 그 국가와 교류를 지원하는데, 예전에 한국이 그 대상 국가였던 적도 있고, 프로그램에 한국 출신 작가가 참여한 적도 있어서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미켈라: “Amsterdam Fund for the Art”에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모여 있는 그룹을 지원해달라고 설득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협력을 통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는 1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으니 설명하기 더 쉬워졌지만, 처음에는 우리가 하려는 것을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안드레아: 이 지원금을 받아서 콜렉티브로서 움직일 것인지 기관(institution)으로서 작동할 것인지가 고민이다. 우리가 기관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다. 일종의 법인이 되는 것이다.
콜렉티브가 기관이 되다니,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작은 독립공간과 큰 기관 미술관 사이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네덜란드에 있는 제도인가? 우리나라에도 사업자를 내거나 협동조합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마크에게 기관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안드레아: 일종의 협회 같은 건데, 네덜란드에서는 “stichting”이라고 한다. 우리가 stichting이 된다면, 더 큰 규모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활동을 하다 보면 한계지점을 넘어 좀더 진지한 작업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될 텐데, 이 다음 국면을 생각하다 구조적인 지원(structural funding)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단지 프로젝트를 굴리기 위한 기금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지원금을 받는 개념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가 이 단체 소속으로 월급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책임은 많아지겠지만.
미켈라: 법인이 되면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안드레아: 한국에서는 생소한 일이라고 했는데, 이런 문화적 차이가 흥미롭다. 나는 크로아티아 출신인데, 문화예술 생산에 정치적인 함의가 무겁게 실려 있는 분위기였다. 무언가를 만들 때 언제나 나의 행위자성(agency)를 돌아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비평적 견지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분위기가 다르다. 물론 제도는 정치화된 영역이지만,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이런 점은 상당히 신자유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니 우리가 “기관이 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도구로 삼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에서 재단 설립은 아주 쉽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행정 처리도 아주 쉬워서 7분만 투자하면 온라인으로 재단을 세울 수 있다. 물론 여기서도 대안적인 문화와 경전화된 기관 사이의 격차는 있지만, 그 격차가 한국만큼 정치화되지는 않는 것 같다. 네덜란드의 문화와 제도상 우리 같은 사람들이 stichting이 된다면, 그것은 일종의 ‘비지니스’를 하기 위한 기능적인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비지니스의 내용이 대안적인 예술 실천일지라도.
주세페: Stichting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좀더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콜렉티브 활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기관이 된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위해 하는 일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사이의 불균형을 수정하고, 더 건강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기관이 되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안드레아: 하지만 흥미롭게도 네덜란드적 사고방식은 기업가 정신을 장려한다. 문화적 사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상업 활동은 하지 않더라도 stichting으로 등록된다는 것은 일종의 기업가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달리 말하면 광범위한 의미에서 자기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주세페 말처럼 우리가 기관이 되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마크는 매년 주제를 정해서 관련된 프로그램, 레지던시, 전시 등을 꾸리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펼쳐지는지 궁금하다. 이제 곧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할 텐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주세페: 첫 번째 프로젝트는 8주동안 진행했다. 팬데믹 기간이라 함께 고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고, 기금도 받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일정을 여유롭게 잡고 우리의 개인 작업과 콜렉티브 작업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Stichting이 되려면 행정적으로는 7분이 걸리겠지만,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야 하니 일을 해야한다.
미켈라: 지금은 팬데믹 이후로 네덜란드의 문화 영역이 막 열리고 있는 상황이라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우리와 참여자들이 장기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안드레아: 우리 각자의 일이 있어서 앞으로도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나는 미술관에서 프리랜서로 리서치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미켈라는 큐레이터이자 프로듀서고, 주세페는 콘서바토리에 직책이 있다. 주세페가 콘서트를 하고, 내가 전시를 해야 하면 마크는 어떻게 해야할까? 기관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얼만큼 어떻게 헌신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참여하기 시작해서 우리 없이도 그들이 무언가를 진행할 수도 있겠다. 네 사람이 마크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힘들이 모여 알아서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