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온 세상이 하룰라라라는 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과장이 아니에요. 어제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가 인터넷을 뒤덮었다니까요? 피로가 몰려 오더라고요. 언어라는 게 원래 빠르게 전염되긴 하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질렸어요. 그 흐름에 올라탈 나이도 지났겠지만, 이제는 그냥 좀 늙고 싶어요.
하룰라라는 하늘나라를 변형한 단어고, 반의어로는 저승나라를 바꾼 저숭라라가 있어요. 원래 발음을 둥굴려 귀엽게 표현한 이 말들은, 여느 유행어처럼 입에(혹은 눈에) 착 달라 붙는 맛이 있긴 하죠. 혐오의 성격이 짙어 비판 대상이 되는 신조어들도 말맛이 좋지 않으면 유행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맛이 있건 없건 먹자마자 혈당 스파이크 같은 걸로 잠깐 머리가 띵해졌어요. 정신을 차리고 이게 어디서 유래한 말인지 구글에 검색했죠.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의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라는 가사가 하룰라라가 됐다는 개소리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바뀌는 건지 머리가 뒤죽박죽 됐어요. 조금 더 찾다 보니, 신조어를 모은 블로그 글에서 하룰라라와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가 함께 언급된 것을 AI가 대충 버무려 알려준 거더라고요. 더 피곤해졌어요.
하룰라라든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든, 쓰임새는 비슷해요. 팬들이 자기 아이돌 사진에 붙여 주접 멘트로 사용하면, 각종 기업의 홍보 담당자가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따라 쓰고, 곧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계정이 그걸 반복하면서 이 신조어들도 쭈글쭈글해지고 생명을 잃어가겠죠. 제가 하룰라라를 처음 접하고 느낀 불쾌감은 이 지겨운 루틴을 한꺼번에 떠올린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뭐든 결국 낡고 사라지는데, 그런 당연함에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사실 5월 31일에 한 차례 글을 썼는데, 타이밍을 놓쳐 공개하지 못했어요. YPC의 전시인 《Philadelphia est urbs mea 필라델피아는 나의 도시입니다》의 기록 영상을 빨리 편집해야 했고, 다른 일들도 겹쳤거든요. 갑자기 바빠지다 보니 글 쓸 내용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새로운 글을 몇 번이나 쓰려고 시도해 봤는데, 그때마다 지난 글만 되새김질 하다가 실패했네요. 글도 유통기한이 있나 봐요.
그 사이에 기록 영상은 완성했어요. 작가들이 펼쳐 놓은 길을 따라 작은 조각들을 하나하나 보던 매력이 영상에 잘 담기지 않는 것 같아 자책하면서 편집했어요. 중간에 다시 가서 드론을 띄워 볼까 했는데,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데다 이미 이틀간 촬영을 마친 터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전시가 끝나고 보니, 없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요.
그리고 《YEEDORA》를 놓쳤어요. 몇 년간 YPC 전시에 개근했는데. 전시를 보는 일은 제게 약간의 강박을 동반해요. 글을 쓰는 오늘을 기준으로 듀오링고 출석 1980일째, 저에게 출석은 최후의 의무나 마찬가지예요. 학교 다닐 땐 안 그랬지만···. 어쨌든 전시 관람은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노력이었고, 그 관성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봐야하는 전시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데, 끝이 있다는 당연함이 조바심을 부르네요. 어차피 세상 전시 다 볼 것도 아닌데.
서울 골목 골목을 미친듯이 쏘다닐 때가 있었죠. 2년짜리 단기 전시장이라는 게 내 청춘처럼 시한부라서 그랬나? 그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일어났던 일들도 지금 생각하면 제겐 불꽃놀이 같이 팡팡 터지는 도파민 파티였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7년 계약만 채워도 감지덕지인 아이돌 사진에 하룰라라거리는 사람들도 그게 순간이라는 걸 잊기 위해서 그러는가 봐요.
몇 달 전에 나흘간 열리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워낙 짧은 기간이라 가능한 전시장을 지키려고 했는데도, 닫을 때가 되니 아쉽더라고요. 그때 머릿속에 ‘전시는 닫으려고 여는구나’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어요. 엉터리 같은 말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 있네요. 무슨 뜻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시를 계속 열고 닫다 보면 알 수 있으려나.
하룰라라나 저숭라라는 그래도 영원한 나라네요. “영원한 건 절대 없어”를 외치던 지드래곤의 전성기도 지나갔고, ‘깊은 밤을 날아서’를 쓴 이영훈 작곡가도 생전에 이문세와 영원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어린애들 놀이 같아요.
손주영
청하와 이달의 소녀의 팬이다.
(전시 영상 기록에 관련해서는 @exhibitionvideoarchive로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