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 펜 클럽은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는 모임이다. 루크, 총총, 김뺘뺘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5년 9월에 학내 비공식 소모임으로 시작했다. 2016년 9월부터 작성한 글을 웹사이트(yellowpenclub.com)에 게재했으며 현재까지 스물다섯 편의 글을 게재했다. “미술과 미술 아닌 것에 관한 글”이라는 주제 아래 기존의 전형적인 미술 비평이나 전시 리뷰와는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
시작과 지향점
옐로우 펜 클럽을 시작한 첫 번째 동기는 동시대 미술 담론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옐로우 펜 클럽의 구성원 세 사람은 대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하면서 만났다. 전시를 단지 감상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이를 다루기 위한 보다 정확한 언어를 확보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학계와 현장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이론theory과 실천practice 사이에 약간의 시차는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그 사이를 매개하는 담론discourse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때문에 그 간격을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론 공부와 함께 동시대 미술 현장에 대한 비평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에 모여서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 주로 관심을 두는 주제보다 시간과 거리가 우리와 가까운 글을 읽고 쓰고 싶었다. 또한 동시대 실천에 가까우면서도 이론적 토대를 갖춘 글을 지향했다. 이론을 무작정 배제하거나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글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론이 되기를 지향하며 미술 실천과 교차하는 글, 그리고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실천이 되는 글쓰기의 영역을 스스로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함께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대화를 하고, 글을 썼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각 구성원이 취하는 미학적 입장이나 주목하는 미술 실천, 그리고 지향하는 글쓰기의 방식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관점을 글로 작성하여 공유하고, 각자의 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나름의 리듬이 생기기도 했다. 이 시기의 끝자락에, 우리가 나누었던 말과 글이 휘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 이야기들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끼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온라인 플랫폼을 계획하게 됐다.
둘째로 기존 미술 관련 지면들이 주목하지 않는, 우리가 관심을 갖는 미술의 면면들을 다루고 싶었다. 옐로우 펜 클럽은 여러 미술 공간의 전시를 구분 없이 두루 보러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신생공간’을 중심으로 움직인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재미있게 봤던 것이 사실이다. 그 전시들은 기존 미술 잡지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혹은 부정확하게 다뤄졌고, 우리는 그 전시들에 관한 유효한 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먼저 그런 글을 쓰고, 그에 대한 말들이 덧붙여지기를 희망했다. 이로써 전체적인 비평의 지형에 보다 이질적인 층위들이 끼어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신생공간의 전시를 다룬 것이 실제로 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의 지면들이 주목하지 않을 만한 규모의 전시를 면밀히 다루거나, 중점 있게 다룰 만한 전시일 경우에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여 기존의 지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공백을 채우고자 했다.
셋째로 기존의 미술 비평과는 다른 글을 써보고 싶었다. 옐로우 펜 클럽은 주목하는 주제뿐만 아니라 글의 종류에 있어서도 통상적인 전시 리뷰나 비평문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했다. 정형화된 비평문의 유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던 우리는 다른 종류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했고, 그 가능성을 우리의 플랫폼에 조금씩 펼쳐보고자 했다. 그 결과로 비평적 거리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과 나란히 가는 글, 전시 리뷰 같지 않은 전시 리뷰, 미술 언저리에서 쓴 글 등을 썼다. 이를 통해 대상 전시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을 거듭하는 종류의 리뷰나, 이론이나 역사적 레퍼런스를 헐겁게 이어붙인 일련의 비평문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지점을 다루고자 했다. 또한 새로운 글에 대한 모색은 직업 비평가가 아닌, 학생이자 성실한 관객이었던 우리의 자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기존의 지면에서는 볼 수 없는 글, ‘본격’ 비평가가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비평적 관객에 가까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기존의 매체에 적합하지 않으며, 직업 비평가가 쓰기에도 적합하지 않기에 우리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입장에 특정적인 글쓰기를 하겠다는 지향에 따라 필명을 사용하게 됐다. 즉, 본명으로 쓰는 학술 논문이나 비평문, 전시 리뷰 등과는 다른 종류의 글을 쓰기 위해, 그 글에 적합한 이름이 새롭게 필요했다.
실행과 과정
옐로우 펜 클럽은 ‘신생공간’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시 미술계의 지형에서 탄생했다. 때문에 ‘신생공간’의 운영방식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일련의 작가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다른 매체에 글을 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글을 발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SNS상에서 충분히 홍보와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했고, 우리 역시도 그 일부였다. 그들이 앞서서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 옐로우 펜 클럽의 구체적인 구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옐로우 펜 클럽은 보고 배울 좋은 선례가 있었기에, 그리고 구성원 세 사람이 동료가 되고 서로 의지했기에, 용기를 얻어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을 결심한 뒤에는 ‘신생공간’이 운영된 방식과 비슷하게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한 채 이름을 짓고, 로고를 만들고, 웹사이트와 SNS 계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옐로우 펜 클럽은 종이 매체가 없는 웹 플랫폼이라는 정체성과 ‘신생공간’을 본뜬 비평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이 더해지게 됐다. 돌이켜보건데 웹진이라는 형식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옐로우 펜 클럽은 거기에 더해 일종의 ‘신생공간 자매품’으로서의 비평 플랫폼의 정체성을 띠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모바일 친화적인 가볍고, 빠르게 읽히는 글을 생산하게 됐다. 마치 ‘신생공간’이 ‘굿즈’의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옐로우 펜 클럽은 기존의 종이 잡지에 실리는 미술 글과는 무게가 다른 글을 은연중에 생산하게 됐다. 그러나 ‘신생공간’처럼 언제든 휘발될 수 있는 일시적인 가벼움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의 타임라인에 반응하여 함께 가되 누적되어 깊이를 축적하기를 바랐고, 실제로 각 필자의 글들은 필자가 의도하거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나름대로 일련의 흐름이나 공통된 주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에 썼던 글이나 글을 쓰기 위해 정돈했던 생각들이 그다음의 글로 이어지고 나름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한 바탕이 됐다.
옐로우 펜 클럽에 있어 웹 플랫폼이라는 것만큼 중요한 정체성은 혼자가 아니라 세 명의 구성원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옐로우 펜 클럽에 발행되는 글들은 단순히 각자가 따로 완성한 글을 모아서 업로드 하는 것이 아니다. 세 명의 구성원은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하며, 한 편의 글을 생산하기까지 서너 차례의 모임과 피드백 과정을 거친다. 완결된 글을 교환하여 피드백하는 방식이 아니라, 글의 작성 단계에서부터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수 페이지에 달하는 초고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한 문단의 스케치나 아이디어만을 가져오기도 한다. 각 필자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여러 차례의 대화 과정을 거쳐 주제를 더욱 구체화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협업 과정을 지속하면서 구성원들은 서로의 글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서로가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세 사람은 미술과 만나는 태도도, 관심분야도, 글을 쓰는 스타일도 모두 다르지만 동료이자 토론자이자 편집자로서, 무엇보다 서로의 가장 큰 팬으로서 함께 해왔다. 서로의 글의 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그만큼 서로의 글에 대한 책임을 일정 부분 함께 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만큼 동료가 쓰는 글의 의도를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한 노력 역시도 옐로우 펜 클럽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성찰과 미래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나름의 성취와 몇몇 한계가 있다. 옐로우 펜 클럽이 목표한 바는 담론으로 발전해나가는 글을 생산하는 것이었으나 그동안 생산한 글은 대부분 단편적인 리뷰나 단상에 그치고 있다. 또한 동시대 실천에 가까우면서도 이론적 토대를 갖춘 글을 지향했으나 그 목표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한 탓도 있고, 웹 플랫폼이라는 성격을 따라가면서 간편하게 읽기 좋은 글을 시의적절하게 생산하려다 보니 그 깊이나 무게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도 있다. 계정의 팔로워나 게시물의 리트윗, 공유 등의 숫자는 분명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음을 시사했다. 단순 조회수만 따져 보았을 때 웹 플랫폼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 글을 노출시키기 적절한 포맷이었다. 그러나 가볍게 읽히는 만큼 적절한 무게의 피드백은 부족했다. 우리의 이야기에서부터 다른 이야기가 퍼져나가기를 기대했으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옐로우 펜 클럽은 비평계의 ‘신생공간’처럼 신진비평가 혹은 비평가 지망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일궈간다는 점 덕분에 가치 절상되어 평가받기도 했다. 과분한 관심과 호평이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이러한 호평이 글의 내용이나 퀄리티에서 비롯되는지 확신하기 힘들다. 생산되는 글들도 그렇다.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에 관한 글’이라는 모호한 말만큼이나 비정형적인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당초의 기획과는 달리 지금까지 써온 글들이 새로운 글쓰기로서의 비평으로 작동한다고 평하기는 힘들며 담론으로 나아가기에도 적절한, 혹은 충분한 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구성원이 꾸준히 글을 쓰면서 조금씩 만들어가는, 혹은 드러나게 되는 자신의 입장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볍고 짧은 글들이 모여서 어떤 흐름 같은 것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또한 글의 주제나 형식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고, 각자의 지향점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동료와 함께 하는 환경 속에서 때마다 무엇에 대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옐로우 펜 클럽을 가능하게 한 ‘신생공간’이 작동하던 특정한 시공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유통되는 글이 이전만큼의 유효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시점이 왔다고 느낀다. 어떤 일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증언하거나 이에 대한 관객인 ‘나’로서의 루크, 총총, 김뺘뺘의 관점을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는 것, 나아가 이를 제한된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바일 액정으로 읽도록 송출하는 것은 물론 제 역할이 있겠지만, 이는 보편적인 비평이기보다는 다분히 우리의 위치 혹은 우리가 통과한 시공간에 매여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른 호흡으로, 다른 형식과 길이를 가진 글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총총, 루크, 김뺘뺘 모두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각자의 문제의식과 방향성, 혹은 캐릭터를 다듬어갔고 이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했다. 각각이 둔탁하게나마 가리키는 지점이 의미를 잃지 않는 한 이 필명들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며, 아직까지는 그 이름으로 글을 지속하여 게재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술계의 지형 변동과 함께 그곳에서의 세 구성원의 위치와 입장에 한편으로는 미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우리의 본명이나 또 다른 필명을 통해 해야 할 과제들을 실감하고 있다. 옐로우 펜 클럽으로 활동을 지속해 본 후에야 사후적으로 우리의 방향성을 보다 명확히 규정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음 스텝의 지향점도 어쩌면 직접 내디뎌 보아야 비로소 선명해질 것이다. 다만 다음을 기약하며 몇 가지 전환들을 짚어볼 수는 있겠다.
우선, 옐로우 펜 클럽은 모임의 초기 단계부터 공유하고 있던 이론에 대한 관심과 담론에 대한 갈증을 숨기지 않고 전면에 드러내고자 한다. 이론과 담론을 다룬다는 것은 단지 학계의 논의나 해외의 텍스트를 수입해오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있는 환경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관점 혹은 사유를 전개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비단 통상적인 의미의 미술 이론 혹은 미술사 영역에 국한된 작업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작품에 대한 면밀한 해석, 미술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 매체를 다루고 사유를 전개하는 작가와의 거리를 적극적으로 좁혀가기로 한다. 지금까지의 글들에서 주로 취했던 미술 관객으로서의 시점에는 분명 유효한 지점이 있고, 이 부분은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미술에 대하여 외부인을 자처하기에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미술(계)이(가) 필요로 하는 글을 생산하되 이제까지의 옐로우 펜 클럽의 태도를 더 선명하게 녹여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글을 유통시키는 다른 플랫폼의 형식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웹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글을 담는 매체의 성격에 따라 글 자체의 성질, 그리고 그것이 읽히는 호흡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고, 이에 웹이 아닌 다른 형식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지면을 통해 소책자 시리즈나 단행본과 같은 출판 기획을 시도하고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면을 매개로 다양한 독자층과 접점을 만들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기 바란다. 하지만 우선 올해는 구성원들의 개인 사정 및 다음 스텝에 대한 준비로 인해 일견 활동이 뜸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우리의 독자들이 있다면, 2016년과 2017년에 과분한 관심을 보내주셨던 것처럼 옐로우 펜 클럽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 월간 미술세계 2018년 3월호 특집 ‘미술비평진단’에 비평수기로 지면화한 원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특집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se1984.com/magazine?article=1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