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윤, 이초록 작가의 이인전 《핑킹가위 증후군》(10의 n승 세운상가, 2025)을 보러 갔다. 예전에 어느 학교 오픈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의 작업을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은 형광색과 반짝이를 써서 알록달록 꾸미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못이나 나사, 압정 같은 단단하고 어두운 재료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대학원 친구이면서 완전 다른 스타일의 작업 안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사람들의 2인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다.

전시장은 한 평 남짓 작은 공간이었다. 그 작은 공간을 온갖 것들이 꽉꽉 채우고 있었다. 포장지, 열쇠고리, 작은 인형, 이상한 도자기, 노끈 등등. “습관처럼 모으기를 지속한 물건”1들이 빼곡했다. 그야말로 맥시멀리스트의 전시! 유리창 너머로 닿지 않는 사물들을 눈으로 열심히 더듬었다. 플로어맵에 표기된 사물들의 이름을 숨은그림찾기하듯이 맞춰 보기도 했다. 물건 잘 못 버리는 사람으로서… 하나하나 저건 왜 안 버리고 모았는지 너무 알 것 같았다.

온갖 종류의 끈으로 만든 리본들. 나도 선물 받았을 때 끈으로 묶어져 있으면 그 끈 못 버리고 모은다.. 이들은 그런 증상을 ‘핑킹가위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상에서 평범하게 쓰는 도구나 버려야 하는 물건을 관찰하고 그것만의 다름을 찾는 강박증”2이다.

온갖 열쇠고리들… 원래 못생긴 게 더 귀엽다… 키링이 열쇠고리라 불리던 시절부터 모은 것 같다.

그와중에, 그 다채롭고 아름다운 사물들의 세계 틈새에 작업이 조용히 놓여 있는 모습이 좋았다.

유리창에 프레임을 그리고 그 프레임 안으로 작업을 보게 한 것도 재미있었다. 최근에 유리창 너머로 보는 전시를 몇 개 봤는데, 각 전시마다 유리창을 쓰는 방식이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써 볼 수 있는 날이 있기를…

선반에는 질감도록이라는 이름으로 종이묶음 책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종이, 포장지, 천 등이 묶여 있었다. 둬 봤자 쓸데도 없고 자리는 계속 차지하고 근데 버리기에는 너무 멋지고 아쉬운…

이 맥도날드 포장지를 본 순간. 아 진짜 이 사람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이런 건 절대 못 버리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를 떠올렸다. 더 이상 아무 쓸모도 없지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 내 부동산을 계속 잠식해 간다.
전시를 보고 와서 내가 못 버리고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나도 핑킹가위 증후군?

테이트모던 종이컵과 두산베어스 유리컵. 대학생 때 처음 테이트모던에 가 봤다. 모든 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그때 뮤지엄 카페에서 새 종이컵을 챙겨 왔다. 저걸 어떻게 캐리어에 넣고 돌아다니다 한국까지 왔는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때 온갖 종이 리플릿을 기념품으로 챙겨서 캐리어 무게가 엄청 나갔던 기억이 난다. 두산베어스 유리컵은 누군가의 집에 갔다가 받아 왔다. 야구 안 봄. 두산베어스 모름.

초등학생 때 해피밀 먹고 받은 스누피 피규어(?). 해피밀 선물로 받은 장난감 엄청 많았는데 다 버리고 이것만 남았다. 키티 무드등은 고3 때 생일선물로 받았다. 이제 건전지 바꿔도 등이 안 들어온다. 둘 다 실내에 뒀는데도 색이 바랬다.

일본 교토 여행에서 가져 온 물티슈. 은각사 관광에서 한국인들이 필수로 들르던 요지야 카페에서 가져 왔다. 게이샤를 모티프로한 캐릭터로 유명한데, 물티슈에 그게 그려져 있어서 안 쓰고 챙겨 왔다.(도대체 왜..?) 지금 검색해 보니, 코로나 기간에 카페가 폐점했다고 한다. 물티슈에는 수분 한 방울 남지 않을 만큼, 카페도 사라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

어렸을 때 해변에서 주운 산호와 조개껍데기. 죽은 산호나 조개껍데기일지라도 해변 생태계의 일원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절대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한다. 어릴 때는 바다 놀러가면 예쁜 모양의 조개껍데기 찾아서 가져 왔었는데, 이제는 절대 안 가져 온다. 십자수 핸드폰고리는 초등학교 때 만든 것. 신랑 신부 세트로 있어서 만들어서 엄마 아빠한테 선물했었다. 아빠는 달고 다니다 잃어 버렸음. 이거 말고도 십자수 작품 하나 더 있는데 너무 못 만들어서 사진 공개는 불가. 난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했는데 손재주는 전혀 없어서 결국 작가는 못 되고 큐레이터가 됐다.(아무말)
사실 이것저것 훨씬 더 많지만 좀 부끄러운 것 같아 누추한 집안 공개는 여기까지… 나는 주로 추억이 있거나 언제가 다시 쓸 것 같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계속 모은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더 애틋해진 물건들은 점점 더 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다 끌어안고 살 거 같다. 질감도록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이제 다시 버리는 방법을 잊어 버렸어..”
《핑킹가위 증후군》 덕분에 모아둔 물건들을 조금 다시 들여다봤다. 나는 단지 추억과 쓸모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면, 두 작가들은 물건의 만듦새와 쓰임새를 살피고 다른 쓸모를 또 찾아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멋지게 느껴졌다. 평범한 종이봉투에서 멋짐을 발견하고, 택배 완충지의 또 다른 쓸모를 고민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고 쉽게 버리는 것들에서 다름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작가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정현
2016년부터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에서 글을 썼고, 2022년부터는 전시 및 프로그램 공간 YPC SPACE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필명(총총)과 본명(권정현) 사이의 구분은 흐려졌으나, 그럼에도 때때로 총총으로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 사이에는 여전히 뭔가가 남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