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제는 운영 종료한 인사미술공간(이하 ‘인미공’, 2000~2025년)의 건물 바깥에서 그 꼭대기를 바라보거나, 안에서 3층으로 올라가 위를 바라보면 나무들이 보였다. ‘보인다’가 아니라 ‘보였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제 적어도 인미공 안에서 나무를 보기는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인미공에서 일하던 시기에 나무들을 향해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찍으려던 적도 많았다. 무엇 때문이었든 그 사진들 속에는 나무들이 있었다. 나무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무들은 2006년 인미공이 원서동에 자리 잡을 때 심어졌다고 하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에는 이런저런 책자를 뒤적거리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동안 이유도 모르고 바라보며 화면에 담았던 인미공의 나무들이 한때 아카이브이자, 프로덕션이자, 워크숍이자, 출판을 상징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아카이브, 프로덕션, 워크숍, 출판이라는 미술의 실천 방식들을 나무와 같은 여러해살이 식물로 상상했던 걸까. 그런데 그 나무들은 원래는 땅이 아니었던 곳을 땅으로 삼아 자리 잡고 있었다. 뿌리부터 줄기, 가지, 이파리, 꽃이 자라나는 데 나무들은 좁은 땅을 공유했다. 처음에 새로운 땅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만약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거대해지면 그 작은 땅으로 대체 어떻게 감당할 셈이었을까?

이 또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런 난감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인미공의 아카이브라는 나무는 2009년에 아르코미술관으로 이식되어 아르코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또한 하나의 땅을 공유하며 아카이브와 서로의 뿌리를 접하고 있던 프로덕션, 워크숍, 출판은 미술관의 프로그램으로 통합됐다. 작고 좁은 땅이었던 인미공은 “전시를 위한 전용공간”이 됐다. 나무들을 더 넓은 땅에 옮겨 심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모르겠다. 아마 그리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나무들은 여전히 인미공 위에 자리를 지키며 살아 있었다. 미술의 실천 방식으로서 나무들은 2009년에 분명히 다른 곳으로 이식되거나 통합되면서 솎아 베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인미공의 실제 나무들은 그 수가 과거에 비해 오히려 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긴 시간이 지나며 자란 탓인지 모양이 더 풍성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빈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생명이 다한 나무처럼 서 있기도 했다. 때로는 수종이 달라 보이기도 했다. 나무들의 상태는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 보였다. 나는 식물에 대해 잘 몰랐기에 그저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굴려 볼 뿐이었다.

아카이브, 프로덕션, 워크숍, 출판이라는 네 그루의 나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이 2007년에 만든 인미공 로고가 떠오른다. 올해 상반기에 인미공의 마지막 전시 《그런 공간》이 열렸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이 로고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오랜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인미공 로고는 압핀 네 개가 중심을 향해 꽂혀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시에 “전시, 워크숍, 아카이빙, 출판”이라는 인미공의 네 가지 주요 활동이 모여서 하나의 미술 공간을 형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압핀 네 개는 나무 네 그루와 같다. ‘프로덕션’이라는 나무가 ‘전시’라는 압핀으로 바뀌었으나, ‘전시’라는 말이 ‘워크숍, 아카이빙, 출판’과 함께 있다면 홀로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맥락을 갖기에 ‘프로덕션’과 ‘전시’ 사이에 의미가 통하는 데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아이덴티티 매뉴얼에 따르면 이 로고는 네 가지 활동이 모여 있는 형태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각 활동 사이 간격을 벌려서 게시물의 모서리 네 군데에 압핀을 꽂은 것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그 외의 방식으로는 활용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가령 압핀을 네 개가 아닌 셋, 둘, 하나만 활용하거나, 각각의 모양과 크기 혹은 방향을 서로 다르게 바꿀 수 없다. 만약 (종이일 가능성이 큰) 게시물에 압핀을 세 개나 두 개만 꽂는다면 그 게시물은 펄럭거리거나 뒷면을 보이면서 앞으로 고개를 숙일 테고, 한 개만 꽂을 경우엔 기우뚱하게 돌아가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네 개의 압핀은 동시에 함께 꽂아 사용할 때 이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때 인미공이라는 공간에서 네 개의 압핀이 지지하는 게시물은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이겠다. 시기, 사회, 사람마다 미술의 실천 방식은 각기 다르겠지만 2006~2007년 그리고 2009년 이전까지의 인미공은 아카이브, 프로덕션(혹은 전시), 워크숍, 출판 활동의 상호 연계와 균형 속에서 미술의 활성화를 시도했던 듯하다.

2020년 인미공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20주년 전시 만드는 일을 보조한 뒤 1년간은 모 국공립미술관 두 곳에서 일했다. 2022년에는 3월부터 다시 인미공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같은 해 근무 시작을 앞둔 2월 16일, DDP에서 열린 전시 《집합 이론》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인미공 로고를 마주쳤다. 인미공 로고는 2009년 이후 그 의미가 의도치 않게 퇴색된 측면이 있고, 2020년대에 들어선 이후 인미공은 아르코미술관과 통합된 로고를 사용했기에, 의외의 마주침이 어쩐지 반가웠다. 네 개의 압핀은 가로로 긴 흰색 벽면 위에서 사이 간격을 넓게 벌린 채로 디자이너의 다른 작업물을 게시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아이덴티티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며 인미공 로고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는 물론 인미공과는 별개로 작업 논리와 관련된 경우라고 할 수 있었지만, 고안된 하나의 방식을 일관성 있게 활용하는 일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인미공 로고를 인미공 밖의 전혀 다른 곳에서 마주한 이후, 나는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인미공에서 인미공의 실천 방식을 활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기 시작했다. 인미공에서 인미공의 실천 방식을 활용하기.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왜인지 온전히 가능한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미공에서 일한 기간 중 2023년에 아르코미술관 전문인 교육 프로그램 〈아트토크 2.0: 작가 과정〉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아트토크〉는 아르코미술관의 이른바 ‘전문인(작가,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교육’이 2021년부터 인미공에서 진행되면서 매년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 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2023년까지 이어졌으며 그 마지막 운영의 일부가 내 몫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2020년에 인미공 20주년을 맞아 새로 시작한 창작 지원 프로그램 ‘인미공 창작소’는 2022년을 끝으로 3년 만에 사라졌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웹진 발행을 겸한 전시와 행사 형식으로 네 차례 진행된 《월간 인미공》(김미정 큐레이터 기획)은 인미공의 압핀 일부를 일시적으로 활성화한 유의미한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쉽게 202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 했다. 인미공의 역할과 예산은 점차 축소된 상황이었다. 〈아트토크 2.0: 작가 과정〉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는 제한 사항들이 있었다. 하나는 인미공에서는 전시와 같은 결과 발표는 지양하고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만 진행해야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결과를 아르코미술관 공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공간열림(구 스페이스필룩스)에서 진행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인미공은 아르코미술관이 “통합 운영”하는 곳이었고, 명목상 “창작 및 연구 지원”과 “네트워킹이 이뤄지는 교류 공간”으로 규정됐기 때문에 일견 타당한 제약들이었다. 그런데 과정과 결과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들이고, 과거를 상상해 보면 인미공은 과정과 결과가 서로 연결되는 활동을 공간에서 일련의 흐름으로 펼쳐냈기에 “창작 및 연구”와 “네트워킹”이 실질적으로 활성화됐을 것이었다.
당시 이해하기 어려운 제약과 전제 조건이 많았지만 그래도 ‘인미공에서 인미공의 실천 방식을 활용해 보기’를 시도하고 싶었다. 낙담하거나 포기하면 나만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다만 목표를 조금 조정하여 ‘인미공 안팎에서 인미공의 실천 방식 일부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앞서 당연한 일이 온전히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느꼈던 바는 과연 현실이 됐다. 우선 과정(인미공)과 결과(아르코미술관)를 공간으로 구분 짓는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여건상 아카이브, 프로덕션(혹은 전시), 워크숍, 출판 이렇게 네 개의 압핀을 함께 활용하기 어려웠다. 인미공의 네 개 압핀은 각각이 갖는 의미도 중요하고, 각 활동의 연계 속에서 미술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했기에 아쉬웠다. 하지만 인미공이라는 공간과 네 가지 활동이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미술의 시간을 어떠한 양질의 경험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미공에서’는 ‘인미공 안팎에서’로 바뀌었고, ‘실천 방식’은 ‘실천 방식 일부’로 바뀌었지만, 제약들 속에서도 작가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미술의 시간을 양질의 경험으로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프로덕션(혹은 전시)과 워크숍이라는 활동은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긴밀하게 연결하며 활용해 볼 수 있었다.
본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하면서 참여 작가들은 16주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좋든 싫든 거의 매주 만나서 알게 모르게 서로를 알아가야 했고, 이 과정에서 ‘멘토’라는 역할로 참여한 두 분을 비롯한 여러 조력자의 크고 작은 조언과 도움이 있었다. 나는 작가들이 무언가 시도할 때 안 되는 이유를 찾아 회유하기보다는 가능한 방법을 찾아 돕고 싶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한 미술의 시간이 한시적으로나마 열리길 희망했다. 마지막 주에 ‘성과 공유’의 일환으로 열린 짧은 전시와 각종 연계 프로그램 또한 그 시간의 일부이기를 바랐다. 물론 이는 내 생각일 뿐이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은 다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미공 (안팎)에서 인미공의 실천 방식 (일부)를 활용해 보기’라는 내 마음속 목표이자, 일종의 롤 플레이(role-play)는 내가 인미공에 머무는 동안 맞닥뜨린 여러 제약들에 낙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힘을 줬다는 점이다.
임석호
기획자이다. 2025년 인사미술공간 종료 전시 《그런 공간》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학교에서 회화와 미술교육을 공부했고, 서울 을지로에서 미술공간 오픈더도어(2015–2018)를 공동 운영했다. 허우중 개인전 《SQUARE》(합정지구, 2024)를 기획했으며, 인사미술공간(2020, 2022–2024), 대전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2021) 그리고 서교예술실험센터(2019) 등에서 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