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당신과의 서신 교환

자정이 지나고 나서야 말할 수 있게 되었네요. 

낮이나 평일엔 버려뒀던 생각들이 이따금 주말이 되어서야 제자리로 걸어 들어올 때가 있잖아요. 꿈에는 소소한 꿈도, 탈출의 멋진 꿈도 있지만 악몽과 불면증의 공포도 꿈의 일종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끈질긴 불면증 같았던 꿈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봐요. 막상 스스로의 정면을 향해 과거에 묻자니 난감하고 불편했던 질감들이 만져지는 기분도 드네요. 그 때문인지 몇 시간째 목덜미에는 고약한 진동이 울리는 느낌이 들어요. 혀를 끌끌 차면서 앞서 작성해 둔 문장들을 연신 지워 버렸어요. 존재한 적도 없이 패배했던 순간을 고백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상기해 보았거든요. 생각에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네요. 결국 제가 쓴 문장들엔 망설임뿐 남지 않은 것 같지만 오늘의 당신에게는 기꺼이 저의 부끄러움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느껴지는 게 날 선 곁눈질뿐이었던 아주 오래전, 잠깐의 과거 동안에 말이에요. 세상을 동그란 구 밖으로 도려내기 위해서 그들을 제멋대로 명명했어요. 이해하지 않기 위해서 싸우지 않았고요. 누구보다 냉소한 사람이 되기를 남몰래 갈망했어요. 강박적인 규율을 만들고 완수하는 데에서 오는 희열이 일상을 이끄는 힘의 전부였던 것 같기도 해요. 어슴푸레한 기억의 15살 그즈음엔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넘는 두께의 책을 매일 두 권씩 읽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했어요. 지금의 20배쯤 되는 독서량을 달성했을 거예요. 

혹시 직소 퍼즐 좋아하세요? 대립과 결집뿐인 이 단순한 놀이를 저는 정말이지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잖아요. 가장 직관적인 공략법으로 테두리부터 맞춰 가는 것 알죠? 생각이란 것도 직소 퍼즐 풀이법과 비슷하게 확립되는 것 아닐까요? 유사와 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눈앞의 현상을 두 조각씩 조직해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그 이상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찌 됐든 과거의 저는 수많은 관계와 원근 법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창고의 토끼굴 같은 통로 하나를 만들곤 애써 안락하려 했나 봐요. 지나친 의무감에 경직된 생각뿐이었던 저는 도착적으로 조숙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분류와 비교, 대조 없이는 그 무엇도 생각하기란 불능하단 걸 일찍이 논리적으로 깨달았으니까요. 그들의 행동 범주를 정의 내리면서, 그들이 뱉은 말들에 강경하게 항변하면서 누구보다 모난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제게 감추어진 본질은 이런 것일지도 몰라요. 분류하기와 명명하기. 꽤 수고롭고 귀찮은 취미예요. 제니 홀저의 〈〈경구들〉로부터〉 연작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가장 오래된 두려움이 제일 나쁘다.’ 짜증 가득한 눈빛을 보내 이 문장을 미워하면서도 어느샌가 품 안에 움푹 끌어안고 살아 버렸어요. 그렿지만 나쁜 걸 재차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서 ‘강박’ 같은 항목은 철저하게 베개 뒤편으로 숨겨 두었어요. 언젠가부터 당신에게 다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단 마음에 스스로의 일부를 규정 않고 내버려두는 훈련도 해보았어요. 범주를 뒤죽박죽 하는 편이 오히려 퍽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잖아요. 다행히 오늘은 애정을 투명하게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외출해 보니 창백하고 서늘한 날씨가 상쾌하기만 하던데요. 

Kenneth Goldsmith, Printing Out The Internet (LABOR Mexico City, 2013). 이미지 출처: NERO.

며칠 전에 케네스 골드스미스의 6년 전 인터뷰를 읽었어요. 조작과 표절을 존중하고 숭배한다는 골드스미스의 의견은 얼마 동안 저를 알쏭달쏭하게 만들었어요. “선택이 곧 저작권(Choice is authorship)”이라는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골드스미스의 말에 빚을 진다면, 애써 썰고 굽는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흘러넘치는 재료들 중에 어떤 것을 취했는가, 그 자체를 산출된 창의력이라 볼 수 있겠어요. 그는 “디지털 시대의 언어가 말 그대로 잘라내기와 붙여넣기를 통해 이동하고 옮길 수 있어 매우 물리적”1이라고 설명해요. 글쎄 언어란 것은 어떤 범주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리 표상되는 것일 테고, 후미진 어느 곳에라도 맥락을 배치해야만 의미가 허용되는 것일 테죠. ‘나’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너’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처럼 언어는 언제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눈앞에 놓인 사물 역시 그것의 지칭과 속성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을 테고요. 골드스미스가 ‘단어’에 대해 “문서에서 별자리 형태로 일시적으로 조작된 코드”라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만큼 언어란 건 ‘상태’보다는 ‘운동’에 가까운 것이겠죠. 이참에 별자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볼래요? 요즘 제 친구들 사이에서는 ‘점성술’이 장안의 화제거든요. 점성술사를 자처하며 자리에 등장한 한 친구 덕에 우리들 여럿의 운세를 점칠 수 있었어요. 점성술의 영어 단어 ‘astrology’는 별의 해석(account of stars)이라는 뜻이래요. 뜻을 읽다가 잠깐 또 마음이 뜨뜻해질 뻔했어요. 우리가 달력이라고 말하는 12쪽짜리 종이 묶음도 마찬가지로 태양의 동선을 잘게 나눈 문서잖아요. 앞으로 태양의 해석(account of sun)이라고 불러 볼까 봐요.

강주홍의 천궁도. 이미지 출처: Astro seek.

“달력이라는 말은 ‘방크(Bank)’와 ‘토어(Tor)’와 같은 테케젤헨(Teekesselchen)’이다. 여러 가지 다른 뜻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하는 단어라는 말이다. (독일어에서 방크는 은행과 의자를, 토어는 문과 바보를 의미한다.) 물주전자와 바보 등을 뜻하는 테케젤헨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한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 이름이기도 하다. 달력 역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여러 의미를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2

적확할 것만 같은 ‘달력’이란 사물의 어원이 이상하게 또 흐리멍덩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왕초보 수준인 제가 천문학을 이해하려 했으니 더욱이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고요. 자연을 배열하고 구획한 투시도 덕에 우리는 1년 365일이라는 구속된 시간을 살아가게 된 거죠. 달력에는 자연의 조화로운 리듬뿐 아니라 인간들의 심술궂은 음모도 내재되어 있대요. 어떤 음모였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오랫동안 인간은 천체가 우리의 안위를 보장하고 우리의 미래를 존중해 줄 거라고 신뢰해 왔죠. 지금 저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도 천체들의 이동 체계에 본인의 작고 큰 사건들을 저울질 하느라 바빠요. 물론 저도 바쁘고요. 혹시 당신도 궁금하다면 제가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줄여 말하자면, 웹사이트 ‘Astro seek’에서 천궁도 차트를 출력하고 프롬프트를 달아서 GPT에게 질문하는 형식이에요.) 이게 요즘 공유되고 있는 유행인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아득한 현상을 기호화하고 별들에게 그럴듯한 묘사를 부여해서 그걸 효력을 갖춘 듯한 사실처럼 여긴다는 게 순수해 보이기도, 귀여워 보이기도 해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거나 영혼을 들이미는 애니미즘과 별다를 게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들지만요. 순수한 상상력이 가닿는 곳까지만, 믿고 싶은 만큼만 읽어 봐요. 

어쨌든 저는 무언가를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 때문에 성격이 몹시 나빠졌던 적도 있지만요. 최근에는 ‘분류’라는 행위를 업으로 삼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인상 깊었던 그의 답변을 아래에 달아 남겨둘게요. ‘범주화의 놀이’나 ‘분류의 행위’가 어쩌면 우리의 의미 공간을 넓혀줄 구실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분류 행위에 쾌감을 굉장히 많이 얻어요. 실제로 아마도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분류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의식과 연결 짓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개인적 차원에서의 의미 부여/의미 설정 절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사회적 기준 또는 산업적 기준에 따라서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분류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서 그 역할과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으로서의 분류 행위는 굉장히 자아실현에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고요. 정체성의 확립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것들이 분류됐을 때 비로소 그것이 나의 것이 된다.’하는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분류란 의미설정 행위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요.”3

최고의 닮음과 최소한의 다름에 대해 저는 더 고민해 볼게요.
바라건대 당신은 아직도 나와 닮은 생각들을 하고 있겠죠. 
우리가 유사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세상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또 만나요.
안녕! 

드높게 열망하고 사랑하세요.
소망을 담아, 주홍 드림


강주홍
미술 곁에 있다. 주로 몸을 바로 세워 그림을 그리고, 몸을 바짝 기울여 글을 읽는다. 때로는 문제 해결을, 때로는 질문을 만든다. 현재에는 도서관과 미술관을 매개하는 대안적인 담론의 윤곽선을 훑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