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PC서로이웃만)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요즘 SNS에는 ‘블로그 덤프’가 유행이라고 한다. 일상의 파편들을 무심하게 모아 블로그에 올려두고 다시 그 화면을 캡처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이상한 순환 구조다. 문득 이런 의문이 스친다. 블로그 덤프를 쓰기 위해 게시글을 포스팅해 SNS에 올린다는 이 트렌드의 시작점은 어디인 걸까. 인스타그램일까, 블로그일까, 아니면 그 알고리즘의 굴레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캡처하고 기록하려는 우리 자신일까.

그 유령 같은 잔상을 뒤로하고 나는 도심의 열기 속 한 공간 앞에 다다랐다. YPC 서머캠프. 공간 중심부에 선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시도 무료 토크도 무료 이 모든 것이 무료, 우리가 파는 유일한 것 티셔츠

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뭘까. 무엇이 ‘전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이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 피어오른다. 최근 광주비엔날레에서 대만 파빌리온의 공식 명칭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 제도적 진통처럼 무언가에 공식적인 이름을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행위는 늘 제도의 경계와 권력의 마찰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입장료도 없고, 사방으로 문이 열려 있으며, 도심 한복판 건물 옥상과 스크린, 라디오 주파수로 유영하는 이 나흘간의 기묘한 집합체를 우리는 전시라 부를 수 있는가. 예술이 전형적인 상품 형태를 포기하고 순수한 시공간의 점유와 집합으로 존재할 때 그 제도를 버티게 하는 물리적 기호가 오직 면 티셔츠 한 장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면서도 유머러스한 미학적 각성을 안겨준다. 제도의 경계가 피워 올리는 그 묵직한 마찰열처럼 찌는 아스팔트 지열 위에서 내 머릿속 질문들 역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Day 1

여름 교회 여름방학 캠프를 가본 적이 있으십니까(사실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무더위 속에서 ‘서머캠프’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YPC 서머캠프 정상영업 합니다

낮 최고 기온이 38~39도를 넘나들며 아이폰 화면에 폭염중대경보 알람이 내렸지만 YPC 서머캠프는 문을 열었다. 교회 여름방학 캠프의 추억은 없지만 대신 나에게는 충무로와 을지로의 메마른 아스팔트 위를 걷던 여름의 기억이 새롭게 배치된다.

[오프닝] 서머 캠프에 초대합니다

[투어] 릴레이 오프닝 《돌연, 눈앞이 열리고. 경계를 넘어서, 어두운 계단으로 나아가며》, 전망

[투어] 릴레이 오프닝 《관문들》, PCO

[투어] 릴레이 오프닝 《파이프 릴레이》, FF Seoul

오프닝을 알리는 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정이 펼쳐졌다. YPC SPACE를 중심으로 전망, PCO, 그리고 FF Seoul로 뻗어나가는 공간의 경로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그늘을 찾아 걷는 행위 자체가 이 캠프의 통과의례였다. 전시장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도심 속에 고립되어 있던 ‘섬’들이 가느다란 발걸음의 경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섬처럼 떠 있는 팥빙수 한 그릇, 사실 찌는 더위 속에 흘러 들어온 이들에게 팥빙수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육지를 건너다 만난 달콤한 구원 구역이다

첫날의 마지막 일정은 나눔이었다.

[나눔] 감귤나무, 바다를 건너다: 디아스포라, 제주 선물

제주라는 지역성과 이주, 식물과 인간의 디아스포라를 매개로 엮어낸 다정한 이야기. 무더위 속에서 타인과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나눔’이라는 단어의 감각이 유독 선명하고 다정하게 다가왔다.

Day 2
[낭독] 건너오는 문장들 1

[낭독] 건너오는 문장들 2

시대가 참 좋아졌다. 이동하는 버스에 가만히 앉아 타인의 정성스러운 낭독을 들을 수 있다니.

이틀째 되던 날 충무아트센터 씨네마와 YPC의 스크리닝 공간을 오가며 메모장에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미디어 아트 스크린 앞에서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다. 카메라 프레임 속에 작품의 프레임을 담고 그것을 다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덤프’한다. 그러나 캄캄한 극장 안 프로젝터의 빛이 관객들의 정수리를 지나 스크린에 도달하는 그 관습적 어둠 속에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저어해진다.

전시장에서 틀어주는 영상은 망설임 없이 사진을 찍곤 해도, 이상하게 극장에서 틀어주는 영상 작업 앞에서는 카메라를 켤 수 없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신체의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되는 전시장의 스크린과 의자에 몸을 고정한 채 시간을 견뎌야 하는 극장의 스크린. 전시장 안의 관객은 자신이 언제든 무대를 이탈할 수 있는 주체라 믿지만 극장의 어둠 속에서는 빛의 신호에 온전히 신체를 내어주는 타자가 된다. 스크린 위에서 흐르는 영상 언어들은 이 어둠 속에서 훨씬 더 높은 밀도로 신체에 침투했다.

“나만 볼 수 있어, 다른 사람은 못 봐.” 

스크리닝 작품 속에서 흘러나온 그 자막이 어두운 극장 안을 서늘하게 감돌았다.

[스크리닝] 많은 방과 흔적의 지도
Day 3

토요일 아침,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긴급 재난 문자가 휴대폰 진동음과 함께 요란하게 울렸다.

[낭독] 건너오는 문장들 3

그러나 YPC 서머캠프의 셋째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폭염의 한복판에서 가장 찬란하게 타올랐다. 오전에는 한여진 시인의 시 낭독으로 문을 열었다. 시인의 목소리가 공간의 입체감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종이 위의 텍스트가 시인의 숨을 타고 음성으로 발화되어 파동을 일으킬 때, 낭독의 결은 공간의 사각지대와 모서리까지 소리의 울림으로 메워 나갔다. 시각적 관람에 익숙하던 방이 오직 목소리의 공명만으로 가득 찬 삼차원의 울림통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뒤이어 이어진 팀 ‘돌연’의 토크. 십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료로서 함께 고민하고 작업해 온 네 사람의 이야기는, 예술 언어가 제도나 시장의 평가 이전에 어떻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직한 유대 속에서 살아남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아침부터 나가기 위해 고민되게 하는 날씨

[퍼포먼스] 디졸브

YPC와 마주 본 건물의 옥상 퍼포먼스 현장, 저 뜨거운 옥상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가도 창문에 모여 땀을 흘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한마음이다.

이날의 결정적 장면은 양윤화 작가의 옥상 퍼포먼스였다. 애초 예정된 시간보다 더 단축하여 진행된 퍼포먼스였지만 그 열기는 밀도 높았다. YPC SPACE와 맞은편 건물들의 옥상 타일 위에서 작가의 신체와 시선은 건물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간섭했다. 날씨와 부딪히며 피어나는 땀과 호흡. 멀리 떨어져 있던 세 개의 옥상이 그 순간만큼은 가시적인 다리로 연결된 듯한 착시를 불어넣었다. 실내 창가에 옹기종기 붙어 서서 밖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로 근사한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나눔] 해방운동의 방법으로서의 항해

이어진 이승준 님의 나눔. 화면에 띄워진 석양빛 바다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충무로의 열기 속에서 저 멀리 팔레스타인 가자로 향하는 구호 선단의 배 위에 올라탄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항해라는 실천. 바다는 경계이자 장벽이지만 배를 띄우는 이들에게 바다는 가장 가변적이고 강력한 연결의 다리다. 폭염 문자가 사방에서 터지던 그 토요일에 우리는 봉쇄된 땅을 향해 구호 선단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의 경로를 얻었다.

Day 4

캠프의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 기이하게도 공기는 조금 선선해져 있었다. 첫 일정으로 PCO에서 진행된 현남 작가의 토크를 들었고 운 좋게 게게르보요 워크숍의 결과물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워크숍] 손 다음 손

[토크] 풍경의 앞면과 뒷면

[토크] 아티스트 토크

이후 YPC로 이동해 이어진 이동현 작가의 토크. 작가의 영상 속에는 용마산 재개발 구역의 깨진 벽과 담벼락이 찍혀 있었다. 건물의 피부인 콘크리트 벽에 밀착하여 서로를 붙잡고, 밀고, 당기는 신체들의 움직임. 그것은 재개발이라는 가혹한 자본의 논리가 도시를 파헤칠 때, 그 공간에 마찰을 일으키는 인간 신체의 정직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같이 있던 댕댕이 귀여우니까 봐주세요, 이 치열하고 진지한 담론의 미술 현장 한구석을 지키던 강아지.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

[토크] 속도의 도시에서 예술을 위한 시간 만들기

이후엔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 YPC 현장에 더 머물지는 못했지만 전시장 한구석에서는 2bpencil 팀이 구축한 라이브 송출 시스템 ‘2b-temp-cast’가 묵묵히 작동하고 있었다. 현장에 직접 오지 못한 이들도 회사 모니터 한쪽에 이 임시 주파수를 켜두고 충무로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라디오 파동으로 퍼져 나가는 대화들. 그것이야말로 이번 서머캠프가 구축하고자 했던 가장 가볍고도 유연한 다리가 아니었을까.

Epilogue

나흘간의 캠프가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블로그 글을 적고, 이 글을 또 SNS에 덤프하기 위해 스크린을 만지작거린다.

YPC 서머캠프는 우리에게 거대한 미술관의 정숙함이나 완결된 형태의 오브제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골목길의 지열, 옥상 위의 뜨거운 바람, 극장의 어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항해 일지, 그리고 임시 라디오 주파수를 나누었다.

셋째 날 아침 낭독을 통해 건너온 시인의 문장들처럼 공간을 뚫고 건너온 언어들은 서로 닿지 않을 것 같던 타자들 사이에 가느다란 결을 내어주었다. ‘너와 나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라는 감각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그렇게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선을 교차시키는 틈새들에서 조용히 부화하는 것이었다.

국가 간의 정치적 셈법이나 비엔날레 파빌리온의 명칭 문제처럼 무언가에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본래 경계를 가르고 주권을 파악하는 막강한 제도의 권력이다. 그러나 옥상과 전시장, 극장의 어둠과 라디오 주파수라는 파편화된 시공간들에 ‘전시’라는 이름을 붙인 행위는 대상을 완성된 틀 안에 가두거나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심 속 각자의 섬에 머물던 신체들이 서로를 향해 건너갈 수 있도록 세워둔 가장 유연하고 다정한 임시 표지판이었다. 딱딱한 제도의 벽 대신 ‘전시’라는 경쾌한 이름을 세워두었기에, 우리는 그 표지판 아래 모여 선선한 틈새를 만들고 무사히 서로에게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

비록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였고 우리 손에 남은 유일한 물질적 형태는 서머캠프 로고가 박힌 티셔츠 한 장일지라도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름의 다리를 타고 서로에게 건너갔는지를.

유난히도 더웠던 2026년의 그 여름. 우리는 분명 충무로의 인공적인 열기보다 훨씬 더 뜨겁고 다정한 연결의 감각 속에 머물러 있었다.

내년엔 덜 더울 때 또 만나요, 서머캠프!

김해찬
자기소개가 쓸 때마다 바뀌는 사람. 지금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가끔 기획도 하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 고는, 하지만 사실 나도 내가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인스타그램 망령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