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몸으로 통과하기

8월 6일 오후 2시, YPC의 세 사람(권정현, 유지원, 이아름)이 직접 서머캠프를 소개하는 첫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다. 최고기온이 39도에 달할 것이란 예보가 있었고, 관측된 바깥 기온은 37~38도를 웃돈다. ‘서머’ 캠프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폭염이다. 나는 밖으로 나서길 머뭇거렸고, 결국 온라인 방송 청취라는 대안을 선택한다. 평일 오후 2시라는 보편적인 업무 시간대는 또 하나의 제약 조건이 될 수 있겠지만, 프리랜서 예술노동자인 나에게는 ‘일반적인’ 업무 시간이란 건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밖으로 나서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방송을 듣는 이유는 단지 더위(하필 하루 중 가장 뜨겁다는 오후 2시!), 그리고 기꺼이 대체재가 되어줄 온라인 송출이라는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어컨 아래에 앉아 화면으로 캠프에 접속한다. 

전시, 상영회, 토크, 워크숍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왜 ‘서머캠프’라는 이름 아래에 열리게 된 걸까? 무언가를 나누고 대화를 촉발하기 위한 매개로서 작품과 발표자들이 초대되었다. 여기서 작품과 발표자들의 말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다음 발화를 촉발하는 매개이자 유동적인 재료로 놓여 있다. 캠프라는 임시적 공동체의 형식을 빌려온 것 역시, 물리적으로 모여 한시적 시간을 함께 점유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대했기 때문일 테다. 결국 무수한 말을 발생시키기 위해 전시, 상영회, 토크, 워크숍이 있다. YPC 인근의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이 사건들을 엮어 임시적으로나마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공동의 플랫폼이 서머캠프라는 형식이며, 그 물리적 거점은 YPC가 된다. 

YPC는 미술을 ‘현장’, 즉 지금의 사회 안에서 발생하게 하고 싶다는 의도로 주변의 예술공간들과 연대해 임시적 시공간을 구성하고자 했다. 또, 그간 YPC가 기획해 온 전시와 프로그램들은 견고해 보이는 경계를 넘어가 보려는 시도였음을 떠올리면 서머캠프 역시 그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실천을 잇는 또 하나의 형식으로 서머캠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만나 말을 주고받는 자리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감각과 연결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한때 공론장으로 기능했던 소셜 미디어는 이제 주체인 ‘나’가 무엇을 듣고, 보고, 소비했는지를 입증하는 장소에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서머캠프는 대화의 자리를 잠시나마 물리적으로 만들어보는 일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4일이라는 한시적 속성이다. 임시성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오히려 이미 견고해진 중심이나 절대적 권위에서 경쾌하게 비껴가는 일을 가능케 한다. 

또한 캠프는 무엇을 마주하고 경험하게 될지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캠프에서 겪은 일과 보고 들은 것들로 변화되는 몸을 갖는 것뿐이다. 알고, 예상하고, 준비된 것에서 벗어나는 우연한 마주침은 무엇을 바꿀까? 서머캠프는 “출발하기도 전에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지식 접근법”을 거부한다.1 이 캠프에 대해 쓰는 일 역시 미리 글을 구조화하거나 결론을 정해두지 않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계획하기 이전에 빈 몸으로 뛰어들고, 몸이 현장에 연루되기 이전에 무엇을 감각하고 볼 것인지 예측하지 않으며, 움직이고 있는 현장을 닫힌 문장에 넣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케줄러와 프로그램 일정표를 번갈아 스크롤하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가보기로 한다. 온라인으로 듣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몸으로 그곳에 있어 봐야겠다.


8월 6일 오후 4시 40분, 6시부터 YPC에서 있을 나눔에 참여하기 전에, 전망에 들러 전시 《돌연, 눈앞이 열리고, 경계를 넘으려, 어두운 계단으로 나아가며》를 보기로 한다. 사무실에서 버스를 타면 30분 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더위가 심상찮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몇 분 사이에 난 땀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전시장에 도착한다. 

전시 《돌연, 눈앞이 열리고, 경계를 넘으려, 어두운 계단으로 나아가며》는 무사시노 미술대학과 조선대학교 미술분과 사이의 담장을 넘는 다리를 설치했던 프로젝트(《돌연, 눈앞이 열리고》)의 기록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다. 다리는 사전에 양측 학교와 합의한 대로 일주일 동안 유지된 뒤 철거되었다. 전시장에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네 명의 작가(리정옥, 정리애, 츠치야 미치코, 하이바라 치아키)가 나눈 대화의 기록을 비롯해, 각각의 작업 중 프로젝트와 연결점을 갖는 작업들이 함께 놓여 있다.

벽면에는 대화의 기록에서 발췌한 몇몇 문장들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적혀 있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다음의 말이다. “다리를 놓는 것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평화의 상징처럼 보이는 건 싫었어요. 그동안 서로 이야기해 왔던 질척거리는 날것의 감정들이 모두 없었던 일처럼 되어 버리는 게 싫었어요.” 그렇지. 질척거리는 감정과 기억들을 묻어두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익히 행해져 왔던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이다. 사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프로젝트 과정에서 과거와 묵은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인데, 전시된 자료는 기록화되어 있었고 사적이고 내밀한 기억에 다가가기엔 언어적으로도 아카이브 전시라는 형식 면에서도 해소되지 않은 묘한 갈증을 남긴다.

그리고 전시에 함께 놓인 도록에는 다음과 같은 영어 문장이 있다. “The exhibition also attempts to show the breadth of interpretation and the complexity of identity that cannot be categorized simply in terms of ethnic differences. (이 전시는 단순히 민족적 차이로만 분류할 수 없는 정체성의 해석의 폭과 복잡성을 보여주려 시도했다.)” 한 개인을 민족성이나 국가성의 기호로 묶어내는 건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혐오의 언어는 대상을 추상화된 형상으로 대할 때 더욱 쉽게 작동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들은 매끈하게 정리된 화해 대신 질척거리는 감정과 복잡성을 ‘굳이’ 남겨두길 선택했다. 이틀 뒤 토크에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8월 6일 오후 5시 40분, 전망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도보 7분 남짓의 YPC로 이동한다. 낮 최고기온이 39도에 육박했으니, 해가 조금 저문 늦은 오후라 할지라도 남아 있는 지열로 후덥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좁은 골목과 대로변의 오토바이 상가를 지나면 YPC가 있는 건물 앞이다. 대로변에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걸어서 올라가는 동안에도 땀이 계속 나 흠뻑 젖은 채로 입장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차피 이 무더위 속에서 누가 무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건물 앞에서 YPC의 지원 씨와 몇몇 서머캠프 참여 작가들을 만난다. 이미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보면서 한결 안심이 된다. 나에게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은 내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 찾아온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더위 속에서 무탈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허탈하게 웃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굳이 괜찮고 무탈한 상태를 연기할 필요가 없어진 채로 함께 입장한다.

오후 6시부터는 연구자 권준희의 나눔 <감귤나무, 바다를 건너다: 디아스포라, 제주, 선물>이 진행된다. ‘강의’가 아닌 ‘나눔’으로 이름 붙인 이 시간에는, 1시간 정도 권준희가 제주도 현지에서 생활하며 수행한 민족지학적 연구를 비롯해 그의 연구 전반과의 연결점을 나누고, 30분 정도 참여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은 제주의 상징이 된 감귤에는 재일제주인 선물로 일본에서 건너온 감귤 묘목의 일화가 있다. 산업의 언어는 긴 역사와 역학관계를 생략하고 고유함과 특수성으로 다시 만들어내지만 말이다. 감귤의 도입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우리에게 제주밀감으로 잘 알려진 온주밀감이 제주 전역에서 재배되고 대표적인 상품이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 시점은 1960년대부터로 본다. 당시 감귤 재배를 장려하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묘목이 부족했고, 그 부족한 수요를 재일제주인의 선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투자가 아닌 선물의 관점에서 제주 개발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재일제주인들이 묘목의 일부를 잘라 한국에 가져가 키워 보라며 건네 주곤 했다는 일화에서 잘려진 묘목의 가지 하나가 사람의 손에 쥐어져 바다를 건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한편 묘목은 사람의 손에 들려 이동했지만, 제주에서 자라나는 과정까지 인간의 의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제주의 기후와 토양과 관계를 맺으며 뿌리를 내렸고,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반응하며 재배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이 만든 조건 속으로 들어온 식물은 그 조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관점으로 보면,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의 갈래가 만들어진다. 말미에 나눈 식물의 생식권에 대한 질문은 앞서 ‘강의’가 아닌 ‘나눔’으로 이름 붙인 이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가 먼저 살아보고, 조사하고, 생각한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건, 무언가를 절대적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다른 위치에서 다시 생각할 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8월 7일 오후 2시 57분, 오늘은 다시 온라인으로 프로그램을 듣고 있다. 3분 뒤에는 낭독 형식의 프로그램인 <건너오는 문장들>이 시작된다. 연구자 혹은 창작자인 이들이 각자의 일기, 편지, 시, 에세이를 낭독하는 자리다. 오후 3시에는 분석미학 연구자인 임수영이 낭독을 진행하는데, 임수영의 글은 이전에 수건과화환에서도 몇 편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일기와 편지는 오래된 문학적 형식이지만 오랫동안 (혹은 여전히) 사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오기도 했다. 사적인 글이 어떻게 공적 경로로 다른 이에게 닿게 되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내가 일기와 편지라는 형식에 이끌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임수영의 일기를 들으며 나는 일상의 장면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지하철역에 앉아 학위논문을 수정하던 순간,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했던 생각들.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갈 수 있는 순간을 다시 쪼개어 그 장면에 부피를 더하는 글쓰기는 일기에서 가능하다. 

일기에서는 ‘오늘은 무엇을 했다’로 끝나지 않고, ‘오늘은 무엇을 했다. 왜냐하면 -’으로 문장을 잇는 일이 가능하다. 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면 왜 쓰지 못했는지를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바빴기 때문에, 지쳤기 때문에, 혹은 쓰고 싶은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온다. 그렇게 축약된 시간은 길게 늘어진다. 올해 초에 사진은 한순간을 기록하고 영속시키는 것에 나아가, 기록한다는 일은 어쩌면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그 주변부를 떠올리게 하는 일일 것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 컷의 사진처럼 존재했던 시간에 다시 부피를 만드는 일이 일기이지 않나.

낭독 중에는 광주의 버스 노선도 앞에서 쓴 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광주는 초정밀 버스 서비스가 제공되는 지역이지만, 예상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은 종종 부정확하다고 한다. ‘곧 도착’이라는 표시 아래 쓰인 시간이 지났는데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 그는 조바심을 내는 대신 풍경 관찰을 택했다. 그리고 조바심을 냈던 이유를 ‘서울의 속도에 맞춰진 내 감각 탓’이라 적는다. 풍경을 관찰하며 본 것들을 나열하는 문장들에서 속도전에 익숙해져 축약된 일상의 시간성이 길게 늘어나는 감각을 느낀다.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오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냥 행위를 나열해 볼 수도 있다. 요리를 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재료 하나하나를 다듬는 일부터 시작한다. 재료를 다듬는 일을 다시 현미경으로 확대해 들여다본다. 토마토는 반으로 썰었나? 오이는 길게 썰었는가, 아니면 어슷 썰었는가? 장면을 확대해 들여다본다. 하나의 행위가 다음 행위로 이어지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행위가 전환될 때마다 동반되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으며, 선택의 주체는 ‘나’다. 그렇게 하나의 행위가 다음으로 넘어갈 때 그 사이에는 이미 ‘나’가 있다. 

이렇게 나는 다른 사람(임수영)의 일기를 들으며 내 문장을 쓰고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나에겐 꽤 자주 있다. 누군가의 사적 기록을 엿보는 일은 타자의 삶에서 잘라낸 몇 개의 파편적 장면들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재료 삼아 나의 삶과 생각을 연결하는 쓰기가 뒤따른다. 내게 말은 자주 대상을 필요로 한다. 타자의 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문장을 시작하는 것. 그렇게 타자로부터 출발하는 쓰기는 비평적 접근의 유효한 한 방식이 된다. 


8월 8일 오후 2시 10분, 다시 YPC로 향한다. 이날은 프로젝트 《돌연, 눈앞이 열리고》에 참여했던 네 명의 작가가 함께하는 토크가 있는 날이다. 내가 탄 버스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어 10여 분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오느라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고 땀을 식히며 가장 뒷줄에 자리 잡았다. 서두에서 프로젝트의 시작점을 설명하고 있었던 듯한데, 다행히 전망에서 열린 전시를 본 터라 앞부분을 조금 놓쳐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현장에는 정리애, 츠치야 미치코, 하이바라 치아키, 그리고 통역을 도와줄 YPC의 아름 씨가 있었고, 리정옥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나 역시 일본의 작가들과 교류를 진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국가성과 위치성을 가진 이들이 만날 때, 그 차이를 동일성과 적당한 합의로 쉽게 덮어버리지 않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이들이 말한 ‘질척거리는 날것의 감정들’을 프로젝트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 나갔는지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이날 토크에서도 화합으로만 끝나는 대화를 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리를 놓는 행위가 희망적인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진심을 주고받는 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과정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크라우드 펀딩 과정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경험하기도 했고, 일본 작가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면서 머뭇거린 순간도 있었다고 말한다.

‘교류’라는 말은 때때로 이상적으로 상호 간의 희망적이고 평화로운 대화를 이끌어낸 결과처럼 제시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 존재했던 각자의 입장 차이는 잡음으로 처리되거나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가 좋았던 것은 그 어긋남 자체를 지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사시노 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미술분과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의 상단에 일부러 작은 턱을 남겨두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리는 경계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경계가 있음을 인식한 채 건너갈 수 있게 하는 일로 다가온다. 그 차이를 없애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효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조금 더 긴 대화를 요하는 일일 것이다. 

또 정리애는 《돌연, 눈앞이 열리고》에서 말하는 ‘열림’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대학교 미술분과 학생들에게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열리는 전시는 접근 가능했지만, 무사시노미술대학 학생들의 조선대학교 출입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곳을 보고 있어도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리정옥과 정리애는 포스트메모리 세대로서 한 개인이 재일조선인의 경험을 모두 대변할 수 없음에도 때로는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놓일 때의 곤란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같은 국가성으로 분류된 두 사람 사이에도 입장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전망에서 보았던 작품 <Playground>(2014–2015)가 아마 이들이 차이를 다루는 방식이지 않을까? 담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캐치볼을 하는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규칙 없이 공을 넘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양측 사이에는 규칙이 생긴다. 그 규칙은 아주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다. 구체적인 것이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바꾸고, 대화를 만든다. 국가성이라는 대표성으로 서로를 추상화하기 이전에, 자꾸 사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들로부터 출발하려는 나의 태도 역시 여기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8월 9일 오후 3시 30분, 서머캠프의 (거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쿤치 스터디 포럼 & 콜렉티브와 와룽 시킬의 <속도의 도시에서 예술을 위한 시간 만들기>가 방금 시작을 알렸다. 현장에 가고 싶었지만 내 전시 철수일과 겹쳐 또다시 사무실에 앉아 온라인으로 듣는다. 그마저도 20분 정도 듣다가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느린 도시(slow city)’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가 어떻게 관광지화되고 자본화되며 변화된 속도 속에서 실천을 이어나가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정작 또 다른 ‘속도의 도시’를 살고 있는 탓에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프로그램 이후에 열린 클로징 행사에도 당연히 참여하지 못했다.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쓸 수는 없으니 일정 부분은 빈칸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서머캠프 기간 동안 내가 놓친 전시와 프로그램이 여럿 있다.


8월 27일, 서울의 미술 현장 안에서만 해도 매주 너무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다. 지금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 미술 현장에서는 다음 주에 있을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과 맞물려 열릴 전시, 퍼포먼스를 비롯한 각종 행사들로 일종의 긴장 상태가 감돌고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보고 들은 후 이를 소화해내기 이전에 다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속도를 살며, 나는 4일간의 인텐스(intense)했던 캠프를 복기하는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캠프는 애초에 무엇을 정확히 알고 계획하고 시작하는 곳이 아니라, 빈 몸으로 뛰어들어 겪고 보고 마주한 것들로 인해 이전과는 달라진 몸으로 돌아오는 곳이다. 4일 동안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4일이 지난 뒤에도 그곳에서 겪은 시간들이 나에게 계속 달라붙어 있는 상태. 나에게는 통제를 내려놓고 땀에 흠뻑 젖은 채 상대를 마주했을 때의 안도감, 다리를 놓되 경계를 지우지 않는 선택, 타자의 문장에서 꼬리를 물고 내 문장을 쓰던 시간, 지나간 찰나에 부피를 더하는 행위, 과거를 뒤로 놓아두지 않으려는 시선이 여전히 달라붙어 있다. 캠프에서 내게 달라붙은 감각들은, 임시적 시공간에서 건너온 말들이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말을 발생시키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신재민
전시를 만들고 보고 쓴다. 전시 공간 더 윌로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간과 개인은 상등이 아니라 교집합 관계라 생각한다. 경계에서 사는 걸 즐기며, 지나치게 분명하고 명료한 것들로부터 도망치기를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