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홍철기
박현정 개인전 《에메랄드 태블릿》
2023. 1. 11.(수) – 2. 12.(일)
오후 1 – 7시 (월요일 휴무)
YPC SPACE (서울시 중구 퇴계로 258 4층)
*오프닝: 1. 11.(수) 오후 5시
기획, 글: 유지원
디자인: 맛깔손
사진기록: 홍철기
영상기록: 손주영
주최: 옐로우 펜 클럽
에매랄드 태블릿[1]: 박현정의 추상 탐구
유지원
박현정은 추상 이미지를 만들고, 그린다. ‘예술가’, ‘화가’, 혹은 ‘창조자’가 아닌 ‘이미지 만드는 사람’은 동시대 시각환경을 의식한 소박한 정체성의 일종이라는 점을 짚어두자. 온라인 플랫폼 및 휴대용 기기를 경유하여 수많은 이미지가 시야로 쏟아지고, 이미지 편집 툴과 스케치 기능의 상용화로 창작의 탈신화화가 급속도로 일어나자 추상 회화는 진통을 겪는다. 그래픽 이미지를 모방하거나 자동화 및 출력의 원리를 적극 수용하여 더 ‘납작한’ 회화를 꾀하거나 오히려 미끈한 이미지에 대한 반작용으로 평면 위 마띠에르를 두텁게 쌓아 올려 그 입체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가 이어진다. 이러한 시간을 통과하며 박현정이 점진적으로 개발한 방법론은 일종의 절충안인데, 새로운 툴을 미술 매체로 기용하되 이를 대단히 새로운 시도로 취급하기보다 그것이 허락하는 효율성을 환영하는 것이다. 실수를 지워줄 뿐만 아니라 화가가 마주해야 하는 막막한 흰 평면에 적절한 정도의 노이즈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장할 것 없는 건조한 태도는 그의 목표가 회화 일반의 구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흥미로운 추상 이미지를 생산하는 점이라는 데 기인한다.
《에메랄드 태블릿》의 출품작은 박현정이 2022년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기호 111에서 144에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박현정의 작품 제목은 image(1)부터 시작하여 완성한 순서대로 숫자가 커질 따름이다.) 이 이미지-그림은 역동적인 동시에 안정적이며, 패턴의 반복과 배치를 기반으로 하되 우발적으로 보이는 스트로크를 포용한다. 아이패드에 스케치하여 완성한 이미지를 종이에 옮겨오는 방법론은 이러한 양가성, 즉 통제와 우연성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스케치와 그리기의 단계 각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스케치: 이전 작업에서 추출한 요소를 반복적으로 배치하기, 브러시 툴을 활용하여 형상을 면으로 전환하기, 레이어를 앞뒤로 불러오면서 전경과 후경을 교체하기, 지우개 툴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반전 효과 주기, 돌연 지웠던 것을 전부 다시 불러오기. 이처럼 아이패드는 실제 그리기의 물리적인 제약을 뛰어 넘는다. 초월적인 힘은 이미지 생산자에게 이따금 즉흥적인 자국을 낼 여지를 준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을 망쳐버릴 선 하나, 균형을 깨는 색면, 모든 레이어 위에 얹은 점 여러 개. 이미 축적된 복수의 층 위에 또다른 층을 얹는 방식은 이미 무수한 이미지가 존재하는 가운데 새로운 것을 생산해야 하는 현실과 공명한다.
이미지 생산자는 이제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의 과정이 마법에 기댄 우발성을 기반 삼는다면, 그리기의 과정은 우연성조차 포함한 철저한 계산을 풀어간다. 디지털 이미지를 실물로 구현할 재료를 선택하며, 그것의 물리적 특성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까지 고려하여 시뮬레이션 한다. 나아가 계획에 없던 단순한 마스킹 실수 같은 것, 심지어 그것이 일어날 빈도수까지 환산하고, 온전히 받아들인다. 이러한 변수는 일정 오차범위 내에 들어오므로 종이에 그린 것을 사진으로 찍으면, 육안으로는 아이패드 스케치 화면과 구별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각적 유사성으로 인해 서두에 언급한 추상 회화에 대한 의심이 증폭된다. 화가의 손은 (실수투성이) 출력 장치로 전락했나? 그림 그리기의 의의는 그리는 사람의 쾌 바깥으로 확장될 수 없는가? (물론 여기서 이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림은 이미지와 다른 존재적 위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이는 그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극명하게 드러난다. 확대한 구석이 전체를 구성하는 퍼즐 피스와 다름없는 이미지와 달리 가까이서 본 박현정의 그림은 일종의 지형을 노출한다. 전시장에 진입하자마자 마주하는 산호색 이미지는 출품작 중 유일한 사진 출력물이다. 박현정의 그림 중 하나를 접사 촬영한 장면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이 이리저리 쓸리는 사막 지대를 원거리에서 포착한 풍경과 닮았다. 그림의 물질성과 미술 매체의 자연으로의 환원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출범하는 자리가 매끈한 출력지라는 점이야말로 현시점 박현정의 작업이 품고 있는 궁극의 아이러니다.
이제 그림을 본다. 이미지의 그래픽 미감과 인공적인 색감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발견되는 것은 공존하는 복수의 지층이자 절단하고 이어 붙인 기후대다. 이렇게 이미지 생산자라는 역할은 세계의 창조자의 위치로 반전된다. 이 전시의 제목인 에메랄드 태블릿은 연금술의 원리를 설파한다. “만물의 힘은 흙으로 통합된다”는 연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세계의 요소를 재조합함으로써 전에 없던 것을 만든다. 이처럼 박현정의 이미지-그림은 과거의 작업이나 브러시 템플릿,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에 기꺼이 노출되며 세계를 증축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적정한 통제와 방임을 왕복하며 증식될 것이다.
[1] 본 전시의 제목 “에메랄드 태블릿”은 윤율리 라이팅 코퍼레이션이 박현정의 작품에 대해 쓴 미공개 글 「그리기 연금술」(2021)에서 언급한 것을 차용했다. 이집트의 현자이자 전설적인 연금술사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가 썼다고 알려진 이 책은 3세기 말 발견되었으며, 연금술과 관련된 14개의 조항을 담고 있다.
Hyunjung Park: Emerald Tablet
11 January – 12 February, 2023
1 pm – 7 pm (Closed on Monday)
YPC SPACE (4F, 258, Toegye-ro, Jung-gu, Seoul, Korea)
*Opening Reception: 5pm, 11 January, 2023
Hyunjung Park’s Emerald Tablet presents a series of paintings that applied Park’s signature methodology of transferring the image sketch on the iPad. Recent works from the series, all from 2022, expand on the artist’s exploration of the methodology and ontology of abstract painting in the contemporary visual environment by mobilizing digital tools as artistic mediums. Amid the abundance of images generated, edited, and distributed online Park’s abstract paintings lie on the intersection of control and contingency, and repetition and generation. Like the art of alchemy that incorporates earthly materials in its attempt at magical discovery, Park’s paintings base themselves on past works or existing images to come up with a never-been-seen landscape. Multilayered in its production, the paintings grow into topological maps – a creation of pseudo-originality when there is supposedly nothing new under the sun.
Curated by Jiwon Yu
Graphic Design: Mat-kkal
Photo Record: Cheolki Hong
Video Record: Jooyong Son
Hosted by Yellow Pen 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