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고스트> (2005)
브라운관 너머로 검은 셔츠에 검은 매니큐어, 거의 밀어버리다시피 한 짧은 머리, 반항적인 인상의 여성래퍼가 드럼비트에 맞춰 랩을 쏘아댄다. 트럭 뒷칸에 꼿꼿이 서서 메가폰 마이크를 입술에 바짝 붙이고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외치는 모습은 랩이라기보단 아지테이션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하다. 래퍼와 드러머가 탄 트럭은 영등포 거리를 무심히 내달리고 스카이스크래퍼와 영등포 시장의 전경이 그 뒤로 교차한다. 먼지 낀 하늘 아래, 무심하고 지친, 나이든, 좁은 시장거리를 살아나가는 사람들과 초고층 건물의 공사계획 판넬이 번갈아 빠른 비트에 휘감겨 어지럽다. “나도 팔고 싶어 나도 사고 싶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나의 욕망을 구해줘.” 카메라가 포착하는 풍경, 앵글, 인물의 차림새, 상황, 공간, 비트, 가사 그 어느 하나 강렬하지 않은 것이 없는 이 작업은 관객의 눈앞에 청년, 세대, 가난, 재개발, 양극화,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문제들을 직설적으로 내던진다. 영등포라는 특수한 공간이 보여주는 파열은 서울로, 나아가 한국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되며 청년-여성-예술가가 가지는 불안과 직결되어 작품이 발표 된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에 진한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Scene #0 2009년 12월, 서울 영등포
친척이 무슨 연말 공연의 티켓이 생겼다며 갑작스레 불러냈다. 막 개장한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 명백하게 맨하탄의 그것으로부터 이식된 이름을 비웃으며 버스에 올랐다. 이미 약간 늦어버린 상황에 무작정 영등포 어딘가에 내리자 저 멀리 타임스퀘어의 간판이 보였고 즉각 그 방향으로 가는 골목을 내달렸다. 이상하게 통행이 없는 거리의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낄 무렵 비로소 머리 위 현수막에 쓰인 ‘청소년 출입 금지’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빛을 뿜는 유리문들의 정체를 깨달은 후로는 그저 전력질주로 달려 빠져나갔던 것 같다. 가까스로 도달한 타임스퀘어는 그 이웃 거리가 무색하게도 너무나 밝고도 거대해서 안심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섬뜩했다.
이듬해 영등포는 통학로가 되었다. 버스는 어디서 갈아타든 어정쩡했다. 너무 많이 걸어야하거나 환승 버스에 너무 사람이 많아 자리에 다 앉지 못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보통은 더 걷기보다는 최소한만 이동하고 버스에 서서 가기를 택했다. 먼지 낀 캬바레와 콜라텍 간판들, 유흥업소의 전단들, 혼자 걷는 젊은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거리에 굳이 섞여들고 싶지 않았다. 반면 타임스퀘어는 반가운 공간이었다. 버스 한 대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cgv와 교보문고와 브랜드샵들이 모여있는 복합쇼핑몰은 ‘내 나와바리’가 되기 충분했다. 혐오와 허위와 타자화와 자기화의 컴플렉스를 안고 영등포를 떠도는 유령은 오늘도 잰 걸음으로 버스 정거장으로 향한다.
Scene #1 2015년 12월, 서울 종로, 삼성 미술관 플라토
작가 토크가 있던 날이었다. 플라토 전체를 개인전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 여성 작가는 몇이나 될까. 폐관 소식을 알리기 직전 플라토는 임민욱의 개인전 <만일의 약속>전을 열었다. 준비한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 앉아야할 정도로 작가 토크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시장은 영상부터 설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들로 가득 차있었다.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몽타주한 영상 작업의 제목이기도 한 <만일의 약속> 전은 남북 관계와 이산가족 문제를 주된 테마로 삼고 있기는 했지만 그로는 다 정의할 수 없는 작가 ‘임민욱’의 작업들 역시도 함께 설치되었다. 미술관을 한 바퀴 돌고 로비로 돌아오는 출구 옆 벽면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가 줄지어 설치되어있었고, 각 모니터에서는 그간 작가가 작업해온 수많은 영상들이 순차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안에 <뉴타운 고스트>가 있었다. 크지 않은 모니터에 높지 않은 화질로 재생되는 작가의 전작들 중 하나. 작품 자체가 가지는 힘이나 의미의 강도와는 별개로 이것이 그 공간에서 이 작업이 가지는 위상은 중견 작가 임민욱의 여타 작품들에 비해 유난히 직설적인 패기가 넘치는 초기작 중 하나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Scene #2 2017년 1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DAAD 갤러리
독일고등교육진흥원(DAAD)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Daad갤러리는 바로 얼마 전 도시 중심가로부터 오라니엔 스트라쎄로 이사해왔다. 이민자들의 거주구역 근처 저렴한 터키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발전한 거리에는 다양한 서점과 예술 실천 공간, 작은 샵들이 들어서서 그야말로 자타공인 베를린 최고의 힙플레이스로 여겨진다. 그래피티로 뒤덮인 산만한 거리에 위화감이 느껴지는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동시대적 성찰을 주제로 한 복합 전시 <Topophilia / Topophobia>전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새로운 세계에서 만날 작업들에 기대감을 안고 들어간 전시 공간에서 마주친 작품은 다름 아닌 <뉴타운 고스트>였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그 안에서 표류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다룬다는 점에서 <뉴타운 고스트>는 충분히 전시의 주제와 들어맞는 작업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작업들이 대부분 2년, 길어야 5년 내의 것이었던 데에 비해 10년도 넘게 지난 작품을 굳이 가져온 것에는 의문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임민욱이 그 후로 장소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크지 않은 전시장에 상설 전시작업은 세 개 뿐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뒤섞여 만난 그것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작품의 시효를 따지는 것은 괜한 시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뉴타운 고스트>는 발표 이후에도 수년 간 수많은 나라를 돌며 전시된 작가의 대표작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스크린 속에 비치는 풍경은 왜인지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달라보였다. 칠이 다 벗겨진 간판과 붉게 살이 탄 메리야스 차림의 노동자, 매정하게 닫힌 개발 공사장의 가벽, 베를린의 거리에서 보는 영등포 시장은 그야말로 그린 듯한 ‘개발도상국’의 정경이었다. 몇 명의 백인 여성이 다가와 작품을 흥미 있게 지켜본다. 래퍼 MK가 화면 속에서 외친다. “그을린 내 얼굴에도 하얀 피부를 이식하리” 노이즈 낀 화면 속 생존을 갈구하는 아시아 여성의 발악은 제 1세계의 거리 위에 번역되고 전시되어 ‘동시대성’의 한 단면을 자처한다. 2017년의 베를린이 장소성을 말할 때 2005년의 서울 영등포를 가지고 오는 것은 어떤 역학을 만들어내는가? 화면 속 영등포의 거리는 서울의, 한국의, 아시아의 근대성을 형상화한다. 이것은 확장이기도 하지만 탈각이기도 하다. <Topophilia / Topophobia>에서는 <뉴타운 고스트>외에도 일본, 러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출신의 작가들이 다양한 공간을 엮어내는 작업들이 설치, 공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포맷으로 전시되었다. 갤러리의 소개문에는 이 전시에서 내보이는 전 지구적 컨텍스트들의 목록이 자랑하듯 나열되어있다. 하지만 갤러리는 단순히 이 작업들을 모아놓는 진공의 공간만은 아니다. 그 어떤 거리 위로 전치는 이루어지고 각 작업이 담는 장소성의 위상은 어떤 방향으로든 변질되고 말 것이었다.
흔들리는 것은 임민욱과 <뉴타운 고스트>의 좌표만은 아니었다. 1세계의 문화를 동경하여 오라니엔 스트라쎄의 가게들을 쏘다니던 힙스터는 <뉴타운 고스트> 앞에서 어떤 거리감을 느끼고 만다. 한편으로는 ‘내가 있을 곳’으로 믿고 싶었던 베를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버린 거리, 그리고 익숙해야 할 스크린 속의 풍경에서 어떤 삼 세계 국가를 보고 말았던 거리를 말이다. 아시아-여성-이방인은 이미 수차례 작품이 반복 재생되고 있는 모니터 앞을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