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무마니를 시키는 법’에 다녀와서

우리는 우리를 페미니스트로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16년의 한국 사회를 지나온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건을 지나온 여자들은 이제 예전처럼은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니 이제 무얼 하지? 여자들은 말로만 페미니즘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한다. 페미니즘 도서를 사서 읽고, 페미니즘을 주제로 … 더 보기 “‘반반무마니를 시키는 법’에 다녀와서”

〈뉴타운 고스트〉 : 영등포, 종로, 그리고 베를린

<뉴타운 고스트> (2005) 브라운관 너머로 검은 셔츠에 검은 매니큐어, 거의 밀어버리다시피 한 짧은 머리, 반항적인 인상의 여성래퍼가 드럼비트에 맞춰 랩을 쏘아댄다. 트럭 뒷칸에 꼿꼿이 서서 메가폰 마이크를 입술에 바짝 붙이고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외치는 모습은 랩이라기보단 아지테이션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하다. 래퍼와 드러머가 탄 트럭은 영등포 거리를 무심히 내달리고 스카이스크래퍼와 영등포 시장의 전경이 그 뒤로 교차한다. … 더 보기 “〈뉴타운 고스트〉 : 영등포, 종로, 그리고 베를린”

2016년 결산 잡담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마무리하며 옐로우 펜 클럽은 1년간의 경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미술 전시, 독서, 대중문화 등의 분야에서 있었던 각자의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2017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보았다. 대화는 2016년 12월 16일에 진행되었으며, 이후 편집과정을 거쳤다.   신생공간의 정점과 내리막길, 그리고 국공립 기관의 침체 루크 2016년 초부터 생각하면 <평면탐구>가 처음이었던 거 … 더 보기 “2016년 결산 잡담”

fldjf-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기

박보마 혹은 fldjf studio가 연출한 공간은—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미완성의 상태이고, 어디서 본 듯 하지만 결코 정확한 레퍼런스를 짚어낼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가 그 공간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려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갈 곳을 잃고 약간은 음산할 정도의 멍한 느낌만 끈질기게 지속된다. 하지만 그녀는 거듭 자신의 작업을 “서비스”라 칭하며 초대하고 약속한다. 파괴된 신텍스로, 때로는 엉터리 외국어 문장들로. … 더 보기 “fldjf-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기”

관객이라는 물음표

모든 예술 작품에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수용자가 필요하다. 책은 독자가 필요하고 영화는 관객이 필요하고 미술 전시에도 관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수용자 집단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주로 어떤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얼마나 적극적인지, 비평적 관점을 갖고 있는지 등의 지표들에 따라서 그 대상 장르의 현재와 전망 또한 평가할 수 있다. 그 수용자 집단이 건강하지 못할 경우, 이를테면 그 … 더 보기 “관객이라는 물음표”

어떤 조종사의 부유

잭슨홍 개인전: Autopilot (2016.9.8-11.12 @ 페리지갤러리) 그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페리지 갤러리의 검은 로비의 짧은 위압감이 무색하게도 눈앞에 펼쳐진 갤러리의 쨍한 바다색의 벽면과 질서를 잃은 원색의 오브제들은 예상치 못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찾아 들어간 잭슨홍의 <Autopilot>은 그 가벼운 질량 안에 나의 ‘미적 태도’를 부유시키고 이내 더 큰 혼돈으로 이끈다. 한눈에 조망 가능할 정도로 … 더 보기 “어떤 조종사의 부유”

김뺘뺘의 일에 대하여

1. 김뺘뺘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작가도 기획자도 아닌 김뺘뺘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미술계의 주변에서 일을 해왔다. 미술관에 다니는 취미가 있었던 그는 우연히 한 미술관에서 초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김뺘뺘는 여기저기에 소환 되었고, 그렇게 그는 주로 “코디네이터”나 “통역가/번역가” 정도로 불리면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김뺘뺘는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미술계가 … 더 보기 “김뺘뺘의 일에 대하여”

waifu2x와 서브컬쳐 이미지의 동학: 더 고화질의 아내를 위하여

디지털 공간 속 이미지는 오직 복사본으로만 존재하며 무한히 자가복제 가능하다. 손실되지 않는 완벽한 화상의 공유와 보존이 가능해진 작금의 기술적 상황은 마치 이미지의 꿈이 실현된 것만 같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게 원본을 내어주지 않는다. 유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화상은 공유의 과정에서 그 물질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기보다는, 그 공유처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의해 축소되거나 압축되어 저화질의 이미지로 … 더 보기 “waifu2x와 서브컬쳐 이미지의 동학: 더 고화질의 아내를 위하여”

◼︎◼︎◼︎을 자꾸 생각하기

1. 매듭지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결말에 도달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중독적이거나 난해해서이기보다 기본적인 필요의 결핍, 즉 갈증이나 허기로 인한 것이었다. 단 한 마디의 말만 정확히 듣거나 말할 수 있다면 놓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다린다.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하지만 결국 듣게/하게 된다면 그 말이었단 것을 알아챌 것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확신을 … 더 보기 “◼︎◼︎◼︎을 자꾸 생각하기”

전시 보기의 괴로움

길고 더운 여름이다. 한낮의 해가 내리쬐는 거리를 보면 밖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가 지고 나서야 더위는 한풀 주춤하고 돌아다닐 만한데, 전시장은 대부분 여섯시면 문을 닫아버리니 별수가 없다. 무더위를 뚫고 전시장에 겨우 당도하면 기진맥진하여 전시도 보는 둥 마는 둥이다. 그래도 에어컨이 있는 전시장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공간은 정말, 힘들다. 얼마 전에는 시청각에 돈선필 개인전 <민메이 … 더 보기 “전시 보기의 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