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미술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역사적으로 ‘미술’, 그러니까 ‘순수예술’이라는 개념은 자신을 기능적인 것, 혹은 상업적인 것, 실용적인 것, 수공예적인 것과 분리하면서 탄생한다. 즉 쓸모 있는 사물이기를 거부하고, 그 자체로 순수한 것으로 남으면서 존재하게 된다. 미술을 성립하게 한 것은 그러한 부정의 논리였다. 세속적인 것을 자신의 반대급부로 놓고, 순수하고 무용한 것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확립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더 보기 “[YPC x CREAM] 미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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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일 하세요?
소설을 읽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휴가가 주어지면 책을 쌓아놓고 읽고 싶다는 상투적인 바람이, 나에게는 타의에 의해 실현되었다. 지난여름, 힘들게 석사 학위를 받을 때만 해도 어쨌거나 앞날은 밝을 줄 알았다. 그러나 미술관 언저리의 크고 작은 일거리를 전전하면서 가을과 겨울을 보낸 뒤에도 나는 어디에도 속해서 일하고 있지 못했고, 이제 주어졌던 일마저도 끊긴 시간에, 나는 … 더 보기 “요즘 무슨 일 하세요?”
〈도면함〉과 시청각 그리고 2017
(시청각, 2017.10.19.-11.19.) 전시장에 들어서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도면을 집어 들고 전시를 따라간다. 도면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조정해가면서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따라갈 때 도면은 지도와도 같다. 도면은 처음 만나는 전시에서 길을 찾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종종 도면이 배포되지 않는 전시도 있다. 관객에게 도면은 있는 것이 훨씬 좋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전시를 기획하는 … 더 보기 “〈도면함〉과 시청각 그리고 2017”
기억을 따라 걷는 노래
이우성 개인전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2017. 8. 28. – 9. 24. 아마도예술공간)에서 관객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천 그림’이다. 화려한 색깔 없이 마치 신문 한귀퉁이를 오린 것 같은 흑백이라는 것 말고는, 작년 개인전에서 본 대형 천 그림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우성 개인전에 맞게 찾아왔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 없이 위층으로 향한다. 그러나 위층에서 … 더 보기 “기억을 따라 걷는 노래”
남는 건 사진뿐?
잘 팔리기 위해서는 잘 찍혀야 한다. 식당을 해도 ‘비주얼이 나오는’ 메뉴를 만들어야 하고, 카페를 해도 사진이 잘 나오는 셀카 스폿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메뉴부터 인테리어까지 사각형의 프레임에 최적화된 유명 ‘맛집’의 사진을 확인한 뒤에 똑같은 사진을 찍으러 간다. 과거의 사진은 순간을 기록/기념하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예컨대 졸업식을 기념하기 위해, 또는 에펠탑 관광의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 더 보기 “남는 건 사진뿐?”
이론 ‘인용하기’에서 ‘이론-되기’로
‘비평의 위기’라고들 한다.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구태의연한 수사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그 말에 솔깃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지언정 ‘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비평의 위기’라는 수사가 거대한 것에 비해 아무런 구체적인 상황도 지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비평이 어딘가 문제가 있기는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더 보기 “이론 ‘인용하기’에서 ‘이론-되기’로”
‘반반무마니를 시키는 법’에 다녀와서
우리는 우리를 페미니스트로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16년의 한국 사회를 지나온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건을 지나온 여자들은 이제 예전처럼은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니 이제 무얼 하지? 여자들은 말로만 페미니즘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한다. 페미니즘 도서를 사서 읽고, 페미니즘을 주제로 … 더 보기 “‘반반무마니를 시키는 법’에 다녀와서”
관객이라는 물음표
모든 예술 작품에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수용자가 필요하다. 책은 독자가 필요하고 영화는 관객이 필요하고 미술 전시에도 관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수용자 집단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주로 어떤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얼마나 적극적인지, 비평적 관점을 갖고 있는지 등의 지표들에 따라서 그 대상 장르의 현재와 전망 또한 평가할 수 있다. 그 수용자 집단이 건강하지 못할 경우, 이를테면 그 … 더 보기 “관객이라는 물음표”
전시 보기의 괴로움
길고 더운 여름이다. 한낮의 해가 내리쬐는 거리를 보면 밖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가 지고 나서야 더위는 한풀 주춤하고 돌아다닐 만한데, 전시장은 대부분 여섯시면 문을 닫아버리니 별수가 없다. 무더위를 뚫고 전시장에 겨우 당도하면 기진맥진하여 전시도 보는 둥 마는 둥이다. 그래도 에어컨이 있는 전시장이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공간은 정말, 힘들다. 얼마 전에는 시청각에 돈선필 개인전 <민메이 … 더 보기 “전시 보기의 괴로움”